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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1월 20일, 안기부는 울산부부간첩사건과 서울대 고영복 고정간첩사건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간첩사건은 아직 수사중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안기부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은 계속되는 간첩수사로 인해 또 다시 매카시 선풍이 일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안기부의 발표 속에 200여명 내사, 1천 5백명의 명단 등이 그런 우려를 낳고 있으며, 진보=친북이라는 등식을 강조함으로써 그런 우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매카시즘은 50년대 미국 정계를 강타했던 초보수주의다. 매카시즘의 특징은 도그마한 이데올로기로 공포정치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합리적인 이성이나 비판과 토론이 들어설 자리를 잃는다. 한국 현대사는 바로 매카시즘의 극대화를 통한 독재권력의 안정화의 역사로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빨갱이’이란 말에는 어떤 검증도 필요없었다. 국가보안법은 이 ‘빨갱이’를 권력과 공안기관의 의도대로 손쉽게 제조해낼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제공해왔다.
‘주사파’라는 가공할 상징
김영삼 정부에 들어와서 이런 매카시즘은 일단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였다. 93년 3월에 단행된 출소 장기수 이인모씨의 북송은 그야말로 ‘문민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통한 지배를 종식할 것을 예고하는 것처럼 기대를 갖게 했다. 그해 12월에는 안기부법이 개정되어 그런 기대는 헛된 것이 아님을 많은 사람들은 인지했을 것이다. 통계로 보더라도 91년 구속 양심수는 1,356명, 92년에는 1,145명이었던 것에 비해 93년에는 총 195명으로 거의 1/6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94년부터 이런 기대는 쉽개허물어졌다. 권력의 뒷켠으로 물러나 있던 보수세력은 북한 발목공 사건, 한총련의 정권 타도선언, 전기협 노동자들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그 터전을 닦더니 김일성 주석 사망사건을 계기로 신매카시즘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 신부는 “일부 야당, 종교계, 언론계에 주사파가 7백50명 가량 암약” 등의 발언을 해대었고, 정부는 곧 주사파의 발본색원을 위한 강경대책을 마련했다. 이제는 주사파라는 상징이 빨갱이라는 상징을 대체하면서 급기야 경상대 교양강좌 『한국사회의 이해』사건과 ‘북한 장학금 교수 사건’등으로 그 광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94년부터 전개된 신공안정국
95년 안기부는 부여간첩 김동식 사건으로 전국연합 박충렬씨를 20일간 고문수사를 벌였지만, 1심에서 무죄선고가 판결이 내려졌다. 96년 단일사건으로는 최대의 연행자를 낸 연세대 사태와 강릉 잠수정 침투사건을 계기로 사회분위기를 초보수화로 이끌더니 급기야는 그해 말 노동법과 함께 개악된 안기부법을 날치기해 버리게 된다. 97년에 들어와 4월에 좌익사범합동수사본부가 대검 공안부에 의해 발족하고, 이후 한총련 출범식을 빌미로 대대적인 한총련 간부들에 대한 검거작전으로 이어진다.
이런 일련의 신매카시즘의 과정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에 의해 선도되고 뒷받침되었다.
“서울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든 난동배들은 본질에 있어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조선노동당」 재남 행동대원들이자 김정일의 충실한 하수인들이지 ‘대한민국의 학생’이 아니다.”(조선일보, 96년 8월 16일자 사설)
위와 같은 논조는 이미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도그마된 이데올로기로서의 신매카시즘의 정체를 잘 보여준다.
이런 극단적인 논리에 대한 비판은 주사파를 두둔하는 것으로 매도되고, 그에 따라 사회적으로 공포와 침묵의 분위기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런 신매카시즘의 등장과 발전을 통해 주목해야 할 것은 공안세력은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하였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고, 따라서 양심수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더니 급기야 96년에는 이전의 정권 때보다도 훨씬 넘어서게 되었다.
검찰 공안부가 주도권 장악
두 번째의 특징은 이전의 정권에서는 안기부가 공안세력의 중심을 자처해왔으나, 이제는 검찰(대검 공안부)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검찰 독재를 우려하는 상황까지 왔다는 점이다.
세째, 신매카시즘은 언론에 의해 다분히 주도되고 있는 점이다. 과거에는 공안기관의 주문(보도지침)에 따라 수동적인 보도로 일관했다면, 현정권에서는 독자적인 자신의 논리를 갖고, 여론을 적극적으로 몰아가면서 신매키즘의 선봉에 언론이 서왔다. 매시기마다 <조선일보>등의 선동으로 매카시즘의 분위기는 조성되기 마련이었다.
넷째, 과거의 활동을 문제삼아 구속하는 사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졌고, 종종 무죄판결도 나오게 되었다.
“너는 누구의 편이냐?”
결과적으로 국가보안밥이 본질적으로 갖는 냉전적 흑백논리를 해체하지 못하는 한, 신매카시즘은 언제나 부활할 수 있음을 현 정권에서 보았다. 40년전 미국에서 종언을 고한 매카시즘은 아직도 “누구의 편이냐”는 물음에 움츠려드는 이 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을 어둠 속에서 가둬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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