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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8 15 통일대축전 참석 경위
북한 당국은 애초에 우리 사제단 초청을 8 15대축전 참가와 연계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음을 평양에 가서 확인할 수 있었다.
8월 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로서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기로 되어 있었고, 그것이 우리 사제단 방북의 중심적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15일 장충성당 미사는 일정 자체에 잡혀있지 않고, 전원 판문점 통일대축전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일정이 짜여 있었다.
우리는 판문점 참가에 대하여 1)방북 목적과 전혀 다르며 특히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도 봉헌하지 않고 판문점 행사에 갈 수 없다는 것 2)남북공동개최가 무산되어 남쪽의 임진각에서 민화협 등이 통일 행사를 갖는데 우리가 북쪽의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은 도리와 예의에 어긋난다는 점등을 들어 거부했다. 4시간 또는 8시간씩 지속되는 연속회담으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한 때는 아침 일찍 미사를 봉헌하고 판문점으로 가도록 하자는 데까지 논의접근이 되었는데 북측이 판문점에서 범민족대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인하여 더 이상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다음날 15일 평양에서 철수하기로 결정 통보했다.
그날 옥류관에서의 점심식사에서 장재철 위원장은 “신부님들은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북한천주교회의 처지는 어떻게 됩니까? 불쌍한 양들을 돌봐주십시오” 하면서 사제들에게 90도로 절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보면서, 간단히 끝내버리고 돌아가는 것이 과연 사목자다운 태도인지 많은 고뇌와 갈등이 교차되었다.
14일 오후 북측에서 새로운 제의를 해왔는데 “어느 분이든 2명만 판문점에 보내주신다면, 같은 시간에 장충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하고, 주일(16일)미사도 약속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우리 사제단은 장시간의 자유토론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였으며, 결론으로 반보씩 양보하여 서로의 목적에 부합되게 합의함이 향후의 지속적인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며, 특히 북한 교회가 난처함을 면할 수 있겠다는 사목적 판단으로 ‘2명 판문점 파견, 7명 장충성당 미사봉헌’ 제의를 수락하기로 하였다.
문규현, 전종훈 신부의 판문점 대회 참석
우리는 2명을 누구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지만 문규현 신부를 파견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북한 사회에서 문규현 신부라는 이름은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특별히 일반주민 대중들에게는 상상을 넘는 대단한 존재였다. 어디서든지 모두가 즉시 알아보고 기뻐하며 달려와 악수를 나누려 했다. 실제로 문규현 신부로 인하여 신앙에 귀의한 사람들이 많이 있음이 장충성당에서 확인되었다. 북한 주민들에게 그 얼굴과 이름 자체로 기쁨이고 희망인 문규현 신부님이 괴롭더라도 다시 텔레비젼 앞에 선다는 것이 전교를 위해서나,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나 더 좋다고 판단하여 문규현 신부, 전종훈 신부를 파견키로 결정했다.
판문점 동포단합대회 연설
참석하더라도, 사제단으로서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되겠다는 의견을 종합하여, 연설문을 작성하여 그대로 낭독키로 합의하였고, 그 내용은
1)사제단은 장충성당 미사를 위하여 방북하게 되었고, 자신을 포함한 2명의 사제를 대표로 판문점에 파견했으며, 이 시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지하고,
2)북쪽의 제의와 남쪽의 수용으로 공동개최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8.15 행사가 무산된 점에 대한 유감 표명과 99년에는 반드시 공동개최를 이루자는 것.
3)남북정부가 7.4공동성명 정신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준수하고 실천할 것.
4)남북 당국자들은 즉시 대화에 나설 것.
5)겨레의 하나됨을 위한 기도문 낭독 등이었다. 연설 전문은 문규현 신부가 안기부에 자료로 제시하였다.
우리는 또한 이렇게 북한 당국과의 어려운 대화와 부득이한 처지의 차선으로 판문점에 2명의 신부를 파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14일 저녁 방북 승인처인 통일부에 알리기로 하였다. 전달받은 통일원 교류협력국장으로부터 15일 “미리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사제단 사무국에 전해왔다고 한다.
문규현 신부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사제단 대표로 참석하여 사제단의 토론에 의하여 미리 작성된 원고를 그대로 읽었다. 북측 판문각에서의 50m 지점 건너편 남측에는 한국측 100여명에 이르는 보도진과 카메라 등이 있었기에 문규현 신부가 어떤 발언을 어떻게 했는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 언론들이 일방적으로 문규현 신부의 참석을 정치행위로 지탄하는 보도를 냈으며, 이미 통보까지 받은 통일원에서는 사무관, 과장 등 간부들이 의도적으로 불확실한 내용을 보도로 흘렸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생각으로는 이들은 통일원 인사들 가운데 햇볕정책을 무산시키려는 세력의 의도를 대변하고 있는 이들이라 여겨진다.
참고로 판문점의 실황은 15일 오후 북한 중앙 텔레비젼에서 녹화 중계되었는데 문규현 신부의 연설은 거의 전 내용이 삭제되고, 사소한 인사내용만 방영되었다. 결국 우리는 사제단의 판문점 참석 내용은 북측 당국자들에게서 비판받고, 남측에서도 비난받았다. 그러나 사제적 양심과 신념과 확신에 찬 행동이란 결국 모두에게 반대받는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복음적 진리를 확인케 되었다.
8월 31일
방북 참여 사제 일동(김승훈, 문정현, 리수현, 안충석, 함세웅, 박승원, 문규현, 박기호, 전종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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