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2001년 11월 울산구치소에서 발생한 수용자 사망사건에 대해, 검찰이 국가인권위의 조사결과를 뒤집는 결론을 내려 사건이 다시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본지 2003년 1월 3일자 참조>
울산구치소 사건은 국가인권위가 출범한 직후 최초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사건이었던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과 국가인권위의 대응은 앞으로 국가인권위의 위상과 활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멀쩡한 상태로 입소""
우선, 사건경위에 대한 검찰과 국가인권위 양측의 주장을 살펴보자.
고(故) 구숭우 씨는 2001년 11월 17일 노역형을 받기 위해 울산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이틀도 안 돼 온 몸에 멍이 들고 피하출혈이 심한 상태로 사망했다. 이 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와 검찰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은 △구치소 입소 전까지는 구 씨에게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입소 다음날 오전, 구 씨가 노역실인 혼거방으로 이동한 후부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점 △구치소 측이 환자의 위급한 상태를 보고 받았는데도 적절한 의료조치를 취하지 않고 장시간 방치했다는 점 등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교도관 2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가혹행위 여부, 상반된 결론
그러나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가혹행위' 여부에 대해 국가인권위와 검찰은 전혀 상반된 견해를 내놓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체부검을 의뢰하는 등 한달 여 동안 조사활동을 한 국가인권위는 2001년 12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입소 다음날 오전 11시경 동료 재소자들에 의하여 구 씨의 전신에 멍든 자국 등 상처가 발견되었으며, 부검감정 결과에 의하더라도 광범위한 피하 출혈 및 근육간 출혈이 발견된 점 등에 비추어 피해자는 구치소 입소 후 누군가에 의하여 가혹행위를 당하여 상당한 정도의 외상을 입은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2001년 조사 당시 동료 수용자 박모 씨가 ""냄새가 지독해 구 씨의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켰는데, 양쪽 팔꿈치·정강이·가슴·엉덩이 등 전신에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왜 '이러느냐'고 물어보니 '맞았다'고 했다. 어디에서 맞았는지는 듣지 못했다""고 진술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반면, 1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한 검찰은 ""피해자가 누구에게도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진술하지 않았으며, 교도관과 수용자들이 구치소 내에서의 소란이나 구타 등을 목격한 사실이 없다""며 ""(가혹행위 의혹에 대해) 증거가 없어 내사종결 처리한다""고 밝혔다. 결국 멀쩡한 상태에서 입소한 구 씨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전신에 상처를 입게 됐는지, 검찰은 납득할만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단순히 '진술과 목격이 없다'라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종결시켜 버린 것이다.
공은 다시 인권위로
이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무부의 입장은 시종 방어적이었고,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보다는 사태를 무마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 사건 발생 초기인 2002년 1월까지만 해도 법무부 측은 ""법무부가 책임질 일은 없으며, 교도관들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결국 1년 만에 환자방치의 책임을 인정하며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였지만, 여전히 진실규명의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앞뒤가 맞지 않는 수사결과는 조사의 진실성마저 의심케 만든다. 예컨대, 검찰은 ""구 씨에 대한 구치소 신체검사에서 특별한 상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사체에서 멍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사망 전 3일쯤 전후에 형성된 것""이라는 식의 앞뒤가 안 맞는 결론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공은 다시 국가인권위로 넘어 왔다. 검찰발표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대응할 차례다. 이대로 검찰의 발표가 기정사실화 될 경우, 국가인권위로선 커다란 타격이 아닐 수 없으며, 앞으로도 검찰이 국가인권위의 조사결과를 뒤엎는 사태가 빈발한다면, 인권피해 구제라는 국가인권위의 주요한 기능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지난해 허원근 일병 사건을 두고 의문사위원회와 국방부 사이에 치러졌던 싸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 국가인권위의 조사가 강한 권위와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책도 검토될 시점이다. 이는 새 정부의 핵심과제인 검찰 개혁 문제와도 무관한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