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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자유를 구속받는 곳이란 말이지?
그런데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불의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하던 사람들이 아직 감옥에 있단 말이지? 아이러니네 그거.
저기 보이는 게 감옥이야? 아니, 이건 박스잖아.
이 더운 날 저기에 긴팔 입고 들어가야 된다구? 이거 괜히 한다 그랬네. 그냥 도망갈까? 너무 늦었다,
흑! 결박은 왜 하는 거야. 팔에 피가 안 통하잖아, 이 사람들아! 어, 손가락이 보라색이야.
엄마야! 왜 쭈구리고 앉아서 지시를 받으라는 거야. 굴욕감 느끼게시리. 점점 후회가 물밀 듯….
그래도 창문은 있구나. 다행이야. 어? 창 밖도 못 내다봐? 저 간수 아저씨 너무하네.
외국영화 보면 감방에 일단 들어가면 맘대로 하던데. 쇼생크탈출 봐. 여배우 포스터 걸어놓고 굴도 파잖아. 몽테크리스토백작맹키로.
정자세로 가만히 있으라구? 저-어, 간수 아저씨! (이하 고함) “뭐, 간수! 당신한테는 교도관이야. 교도관, 어디서 감히… 등등”
저-어, 그럼 교도관 아저씨, 종이와 펜 좀… (이하 고함) “당신 놀러왔어? 반성해, 반성. 무슨 요구야. 주제에… 등등” 종이와 펜도 겨우 수년전부터 반입이 됐다구?
면회요? 누가 날? 아, 어머님, 양심수 어머님이라구요? 아드님은 출옥했는데, 다른 양심수 가족을 위해서 일하신다구요? 찌-이. 저보고 고맙다구요? 늘 잊고 살다가, 무기력하게 방관하다가 오늘 하루 여기 나왔다고 저보고 어머님이 고맙다구요? (화끈!)
또 면회요? 40여년을 양심수로 이런 감방에 계셨던 분이라구요? 어떻게 그럴수가… (말 못 이음)
끊임없이 재소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하라구요? 포기말라구요? 저 펜, 종이 달랬다가 혼나서 그냥 있었어요. 맞고, 고문해도 굽히지 않으면 저들도 포기한다구요? 선생님, 존경합니다. 진심으로. 전요, 독립운동 절대 안할랍니다. 전 한 대만 맞아도 다 불꺼에요.
이 책이 불법반입물이라구요? 그냥 면회와서 넣어 주길래 무심히 받았는데, 벌로 결박당하고 무릎 꿇고 않아 있으라구? 이 사람들, 장난이 아니네. (혈압상승)
책도 맘대로 못 봐, 글도 맘대로 못 써. 눕지도 못 해, 기대지도 못 해, 양심수는 기본권리도 없나?
그리고 도대체 양심수란 무슨 말이야?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죄수란 말야? 양심을 판 사람이 감옥 가는 게 맞는 거 아냐? 근데 왜 우리나라에 아직 양심수가 있는거지? 문민정부하고도 2대짼데.
양심수들이 자신의 존재기반을 위협한다고 아우성을 치던 군부통치도 끝났잖아.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도 갔다면서. 미전향장기수도 저번에 보니까 이북 가던데. 양심수를 너무 다 내보내면 너무 섭섭할까봐?
정말 시간 엄청 안 가네. 예? 6시라구요? (감사, 감사) 푸른 죄수복 벗고, 내 옷 입고, 신 신고, 목이 빌세라 목걸이, 옆구리 안 허전하게 백 들고, 흠, 다시 온전한 인간이 되었구나.
야! 이제 집에 간다.
근데 양심수들은?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 한달도 아니고 수십년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다고 이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구? 그 어머니, 그 가족들이 같이 고통받아야 한다구?
이상해. 나만 이상해 하는 거 아니겠지? 다 이상하겠지? 그지?
무덥게 찌는 8월 어느날 명동성당 언덕길을 터덜터덜 내려오며 한 생각...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명동성당에서는 ‘98 양심수 석방을 위한 캠페인’의 한 행사로 ‘하루감옥체험’이 진행됐습니다. 배유정 씨는 연극배우 겸 방송인으로서 SBS <출발 모닝와이드>, MBC 라디오 <배유정의 영화음악>의 진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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