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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준법서약’을 정부의 ‘고육지책’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양심수에게 있어 ‘준법서약’은 가슴을 후벼파는 또 하나의 비수일 뿐이다. 더 이상 후퇴할 곳 없는 코너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수건’마저 던질 것을 종용하는 ‘심판’ 앞에서 양심수는 고통스럽기만 하다.
◇ 강용주 (85년 구미유학생사건 구속, 20년형)
“면회시간 내내 그 놈의 서약서 문제로 갑론을박, 티격태격, 아웅다웅 하느라고 다른 얘기는 하나도 못했거든요. 빛나던 청춘 다 보내고 열네 해째 갇혀지내는 제가 안타까워서 그러시는 줄 잘 알면서도 ‘사람이 다니는 대문을 놔두고 개구멍으로 기어나갈 순 없다’고 원칙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제가 서약서를 안쓰고 그냥 갇혀 있겠다고 하느냐구요? 권력 앞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내심의 생각을 게워내고 심사받아야 한다는데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던 간에 그것은 나의 자유이고 국가권력은 간섭할 수도 없고 간섭해서는 안됩니다. 차라리 서약서에 불복종하여 계속 갇혀있는 것이 제 ‘양심의 법정’에선 떳떳한 일입니다.”(7월 15일)
◇ 장창호(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구속, 12년형)
“오늘 어머니가 다녀가셨다. 어머니 기대에 어긋난 말을 하고 말았다. 지금 쓰고 출소해 평생을 부담을 갖고 사느니, 조금 더 있다가 나가면 더 마음 편히 살수 있는 것 아니냐고, 6년을 참았는데 한 일년 더 기다려 보자고, 이곳 노인들 다 출소하면 그땐 나도 쓰고 나가겠다고, 참으로 말이 되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실망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상황이 자꾸 죄를 짓게 만드는구나.”(7월 30일)
◇ 이환영(인천대생, 96년 ‘연세대 사태’로 구속, 99년 8월 만기)
“전 요즘의 서약서 논쟁을 바라보며 고등학교시절의 자율학습이란 걸 떠올렸습니다. 말 그대로 자율적으로 공부하라는 자율학습에 왜 그리 조건은 많았는지, 지정된 좌석에, 정해진 시간에,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가던 그 분위기하며. 허용보다는 제한과 한정의 논리들이 저를 꼭꼭 감쌌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율은 ‘알아서’ 라는 것에 그 생명이 있지요. 조건있는 자율은 타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건 이미 타율이 들어가 있는 것이기에 아무리 자율의 가면을 쓰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것이겠지요.”(7월 21일)
◇ 민경우(범민련 사무처장, 97년 구속, 2000년 12월 만기)
“전향제를 폐지하는 대신 준법서약을 통해 정치범을 석방하겠다는 기사와 그에 따른 논란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십년간 옥살이를 하고 계시는 장기수들과 김성만, 강용주, 백태웅, 박노해, 황인욱씨 등 저희들과 가까운 세대이고 고난의 길에 선두에 있었던 사람들이 3.13 사면에서 제외되고 또다시 준법서약이라는 이름의 전향을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과 서글픔 그리고 분노를 함께 느낍니다. 정치적 신념과 지조는 어떠한 폭력과 회유로도 꺾을 수 없으며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투쟁하는 청년들의 기개와 열정은 총칼로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7월 3일)
◇ 리경찬(65년 남파사건으로 구속, 33년째 구금)
“이번 8.15 특사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격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국적으로 장기수 선생님 17명이 있는데 준법서약서 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말만 바꾼 전향서입니다. 역대 정권도 준법서약서 쓰라고 한 적이 없는데 50년만에 정권교체 되었다고 하면서 서약서를 받고서야 석방하겠다는 발상이 군사정권보다 더 나은 점이 없습니다. 북쪽이 고향인 장기수들은 서약서를 쓰면 통일이 되어도 고향에 못가게 하는 고약한 술책입니다. 그래서 비인도적인 처사로 역사에 오점을 남길 것입니다.”(7월 13일)
◇ 백태웅(92년 사노맹 사건 구속, 15년형)
“준법서약서도 전향제와 똑같이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평등권에 위배되므로 조속히 폐지되어야 하지만, 보수세력의 견제 속에서 개혁을 진행중인 정부의 어려운 입지를 고려해 이번에는 정부를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준법서약서를 쓰기로 결정했다. 준법서약 내용에 준법의 의지를 담는 한편, 준법서약제 역시 위헌적 제도이므로 폐지되어야 하고, 비전향장기수와 한총련을 포함한 모든 양심수가 8 15 사면에서 함께 석방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아울러 명기할 계획이다.” 준법서약서는 양심수들의 가슴만 멍들게 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석방을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려온 가족들의 가슴에도 못을 박고 있다.
◆ 차정원(장창호 씨 부인)
“올해 8월 15일에는 당신이 정말 나올 수 있을지 기대를 하다가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 기대가 허물어질까봐 조마조마합니다. 전향제도를 없앤다고 해서 참 잘한다 했는데, 죄도 없는 양심수에게 준법서약서는 또 무슨 날벼락입니까? 정말 아무런 조건없이 당신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와 누구는 나오고 누구는 못나와서 가족간에도 괜히 미안하고 가슴아픈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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