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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6 조 1. 모든 인간은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교육은 최소한 초등기초단계에서는 무상이어야 한다. 초등교육은 의무적이어야 한다. 기술교육과 직업교육은 원하는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고등교육은 실력있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어야 한다.
2. 교육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강화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은 모든 나라들과 인종 또는 종교집단 사이에서 이해, 관용,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엔의 활동을 촉진해야 한다.
3. 부모는 자녀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종류를 선택함에 있어 우선권을 갖는다. ]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치사회적 의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전 생애에 걸쳐 학습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선언 26조는 이러한 교육권을 인권의 하나로서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교육권을 정책적으로 보장하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 산업화가 가속화된 19세 후반이었다. 당시 아동노동에 대한 자본의 가혹한 착취는 오히려 노동력의 재생산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노동력의 안정적 재생산을 보장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 노동력을 양성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민들의 국가적 일체감을 고양시키려는 국가적 필요가 부합되면서 각국에서 초등무상의무교육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 상승과 불평등 감소를 추구하고자 했던 민중들의 오랜 투쟁의 성과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교육권은 '교육의 기회균등', 즉 차별받지 않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을 권리로 해석되어 왔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 기회의 평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사회적 기본권의 하나로서 교육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기회균등의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언이 제정되고 5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 수준의 교육조차도 받지 못한 채 심각한 교육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98년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8억5천5백만명이 기초적인 교육에도 접근하지 못한 채 여전히 문맹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1억3천만에 이르는 취학연령 아동이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중 3분의 2는 여자 어린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가정의 빈곤과 국가의 지원 부족 등에서 기인하는 문맹은 안정된 소득과 직결되는 직업 취득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다시금 빈곤과 문맹을 초래하게 되는 악순환을 영속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경우 문맹의 문제가 대체로 해결되고 초등교육의 무상제공이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지만, 선언의 정신을 충분히 실현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무엇보다도 입시위주의 교육 자체가 26조 2항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상급학교 진학만이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고 있는 교육현실에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심 강화'라는 교육의 목적은 단지 '액자'에 모셔진 경구일 뿐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또 20조원에 달하는 사교육비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연평균 6∼7만에 달하는 중도탈락자 양산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낳기도 한다. 과외를 받을 경제적 여유가 없는 빈곤층 자녀들은 학업성취 측면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고, 입시위주의 학교에서 소외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교육받을 권리조차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권은 국가가 통제하는 획일화된 교육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교육에 접근할 수 있고 교육의 내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적극적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교육선택권'이라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국가가 교육내용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국정교과서제도와 소규모학교 통폐합조치는 학습자와 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경기도교육청의 폐교처분에 맞서 두밀분교 학부모와 학생들이 5년간에 걸쳐 전개한 법정투쟁은 교육선택권을 수호하기 위한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은 바 있다.
선언 제3항이 특별히 학부모의 우선적인 교육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나치의 교육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특정형태의 교육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언은 국가나 학부모가 아닌 학습자 자신의 교육선택권을 명시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인다. 선언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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