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권현장을 뛰는 사람들 (11) 해아래집 식구들(에바다농아원 농성단)
내용
"평택과 오산을 잇는 국도변. 줄지어 늘어선 토종음식점 사이로 '해아래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외지인들이 가끔 음식점으로 착각해 '오리탕'을 주문하러 들어온다는 이 집은 96년 이래 4백50일 가까이 투쟁해온 청각장애인들의 보금자리 노릇을 하고 있다.

해아래집의 주인은 '에바다농아학교' 학생들이다. 막내 미애(16)에서부터 큰오빠 성회(25·97년 졸업) 씨까지 분주히 오가는 손말(수화)을 통해 자신들을 드러내 보인다. 그지없이 순한 인상이지만 장기간의 데모와 농성을 버텨낸 '싸움꾼들'이기도 하다. 

올해 전문대학에 합격한 경훈(21) 씨는 ""농아원에선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고 매일 일만 시켰다""며 대화를 시작했다. ""세끼 밥을 다 주긴 했지만, 낡은 쌀로 지은 밥이었어요. 원장은 제본소에서 일 시키고 월급을 착취했어요."" 필담으로 나누는 대화지만, 재단비리에 대한 분노는 절절하다. 기나긴 싸움 속에서 어린 동생들은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서운 농아원 생활을 돌이키면 다시 해아래집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억울해유""

아들 동식(21·중2과정)을 농아학교에 보내는 정용해(49) 씨에게 최실자, 최성창 전 원장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랬기에 재단과 정면으로 맞붙기까진 나름의 고심과 노력이 있었다. 사태발생후 한 학부모에게서 '무관심'을 질타받은 그는 직접 학생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기로 한다. 재단측을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였다. 한달동안 밤마다 농아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정 씨는 진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도둑질을 한 것은 배가 고파서였고, 항상 찬물로 목욕하는 것은 겨울에도 온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정 씨의 '운동'은 시작되었다. 

정 씨는 자동차정비공장을 경영하는 지역의 '유지'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이상 '유지'로서의 특권과 대접을 누리지 못한다. 알고 지내던 유지들로부터 ""손떼라""는 '권유'도 받고 있지만, 정 씨는 그만둘 생각이 없다. 처음엔 자식 때문에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전국의 장애인을 대신하는 싸움이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정 씨는 최근 감사원의 특감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법, 행정상으론 재단측에 별다른 하자가 없다는 말이 돌고 있는 것이다. 정 씨는 ""당연하다""고 한다. 벌써 1년 이상 지난 문제인데 재단이 '준비'를 안했을리 없다는 것이다. 정 씨는 말한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게 너무 억울합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해아래집의 또 한 식구는 에바다농아학교의 교사들이다. 제자들이 먼저 나선 데 부끄러움을 느낀 11명의 교사들은 지금껏 한 사람의 이탈자 없이 학생들 편을 지키고 있다. 재학시절 데모 참가 한 번 안해봤다는 신연실(34) 교사 등 세 명의 여교사는 아예 해아래 집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 박창숙(36) 교사는 ""우리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건 다름아닌 재단의 악랄함이었다""고 말한다. 

권오일(38) 교사 부부는 유일하게 징계를 받았다. 권 교사는 농성사주, 폭행 등의 이유로 지난해 12월 파면당했고, 부인(김정임 교사)은 직위해제 상태다. 당연히 수입도 1/4로 줄었다. 하지만 권 교사는 ""누군가 당해야 할 일을 우리 부부가 감당하게 된 것은 차라리 잘 된 일""이라며 동료애를 드러낸다. 

끓는 물을 뒤집어 쓰고, 사흘에 한 번 꼴로 폭행을 당하며 보낸 지난 1년에 대해 교사들은 ""한 마디로 악몽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소중한 것을 많이 배웠다. 신연실 교사는 ""학부모들과 처음으로 진지한 대화와 관심""을 주고받았고, 박창숙 교사는 ""늘 아이들 위에 군림해오다 비로소 자세를 낮추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이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김선옥(34) 교사는 말한다. ""싸움을 시작한 후 단 한 번도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버린적이 없다.""


장애인 인권의 미래를 짊어지고

지난 5일 개학과 함께 학생들은 다시 등교했다. 감사원의 특별감사 때문인지 분위기는 그저 고요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원'(수용시설)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성현(19)이는 ""농성 전보다 지금이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원'으로 들어가기는 싫단다. 무섭기도 하고, 해아래집에서 받았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지난 4백여 일 동안 해아래집 식구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셈이다. 유명한 시사프로그램마다 사건을 다뤘고, 일간지 기사만도 2백건이 넘는다. 국정감사도 있었고, 이번엔 감사원의 특별감사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에바다 재단의 위치는 굳건하기만하다. 지역 내 새마음교회의 최창우 목사는 ""동네 주민들은 다 아는데, 관청만 모르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해아래집 식구들은 묻는다. ""장애인을 위해 법이 있는 겁니까? 법을 위해 장애인이 있는 겁니까?""

지금 해아래집은 밝다. 웃음과 장난이 있다. 골리앗 같은 재단과 관청을 상대로 한판승부를 벌이는 이들의 어깨에는 4백만 장애인 인권의 미래와 희망이 걸려 있다. 

해아래집 연락처: 0333-63-0825
농성단 구좌번호(예금주 김주명)
농협 205031-52-099833
국민은행 232-21-0467-997"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5560
생산일자 1998-02-17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정기간행물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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