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남파간첩 등 공산주의 수형자들도 그런 은사를 받고 싶으면 '나는 공산주의 사상을 버렸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전향서 하나쯤은 최소한 써내야만 국가로서도 그들의 사면 여부를 검토할 명분과 체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조선일보 2월 19일자 사설
양심 때문에 구속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기본이고, 사상을 바꿀 것을 강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국제앰네스티 2월 24일 기자회견
김대중 씨가 오늘 15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그의 의지를 곧 있을 양심수 석방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이번에 그가 단행할 양심수 특사의 폭과 내용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부터 인권단체와 양심수 가족들은 '양심수의 전원 석방'을 줄기차게 외쳐왔다. 하지만, 최근 소폭의 선별적인 양심수 석방이 점쳐지고 있고, 그와 반대의 입장도 위에 든 조선일보 사설처럼 공공연히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번 양심수의 석방이 전향서를 쓴 일부의 '모범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이는 다시 우리의 인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구태여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인권조약들의 조항들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사상을 포함하는 양심은 국가권력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권력보다 앞서는 인권
그 양심의 문제로 구속된 이들 중에 92년 14대 대선 직전 터졌던 남한 최대의 지하간첩단이라는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관련자들이 있다. 당시 북한의 권력서열 22위라는 이선실 할머니 간첩의 지도 하에 민중당의 대표였던 김낙중씨와 중심간부였던 손병선 씨를 포섭하고, 황인오 씨 형제를 중심으로 중부지역당을 만들었다는 사건, 관련자만도 수백명이고, 구속자만도 60명이 넘었던 그 대규모 사건으로 인해 김대중 씨는 다시금 대통령 선거에서 북풍의 고개를 넘지 못하고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이 사건의 대표적인 인물들인 김낙중(67) 씨에 대해 국제앰네스티는 ""북한 사람과 만났다거나, 통일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이 그의 구속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밝혔고, 그와 비슷한 이유로 손병선(59), 황인오(41), 황인욱(31) 씨 등을 양심수로 선정했다.
풍비박산난 손병선 씨 가정
이 거대한 간첩단 사건에 대해 당시 안기부는 명확한 증거들을 제시하지 못한 채 불법수사로 일관했다. 영장제시나 피의사실 고지없이 대부분 강제
연행되었고, 잠안재우기와 집단구타 등의 고문이 행해졌고, 변호인 접견과 가족의 면회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가족들마저 연행해 위협하고, 압수수색영장없이 가택수사를 하였다. 결국 이런 불법적인 수사를 통해서 대선을 앞두고 사건은 급속도로 부풀려졌다는 인상을 남기게 되며, 주요 인물들은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손 씨의 경우는 이 사건으로 가정이 풍비박산나고 말았다. 그의 장녀는 구속되었고, 처는 수배 중에 담도암을 얻어 93년 8월 사망했으며, 그의 부모는 연이어 사망했고, 뇌성마비장애인인 장남은 장애인 수용시설에 수용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경우는 94년에 조직을 채 만들기도 전에 구속된 구국전위 사건에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또한, 김영삼 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조직 사건의 대부분도 구체적인 물증 없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건의 연루자들도 이번 새 정부의 양심수 석방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인권의 요구인 것이다. 이 요구에 새 대통령이 얼마나 충실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