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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칸칸마다 쓰레기가 수북하고, 교실엔 쓰러진 책상과 내팽겨쳐진 교과서들이 널부러져 있다. 발랄한 여고생들의 생기 대신 황량함만이 가득한 교정은 도무지 새학기를 맞는 학교의 모습이 아니다. 무책임한 재단과 방관하는 교육관료, 눈치보는 교사들 틈에서 1년간 파행으로 치달은 경기여자상업고등학교(재단이사장 김학만)의 현주소는 이렇게 참담하다.
경기여상의 파행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3월, 추위에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교실을 박차고 나오면서였다. 교육환경에 대한 불만이 발단이었지만, 이후 재단측 비리문제와 연관되면서 사태는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의 농성, 학생들의 시위, 그리고 교육청의 감사가 잇따른 끝에 5월 경기여상 사태는 일단락 되는 듯했다. 교육청이 관선이사의 파견을 약속했고, 이에 학생들은 수업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다시 엉뚱한 데서 촉발되고 말았다. 재단측이 관선이사 파견처분을 취소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자,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재단은 이른바 '양파'(양심선언 참여 교사) 교사 가운데 5명을 직위해제했고, 학생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다시 수업거부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다섯달, 해가 바뀌고 학년이 올라갔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 밖을 배회하고 있다.
교육청 ""할 일 다했다""
사태가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데도 책임 있는 어른들은 두 손을 놓고 있다. '양파'의 한 교사는 ""설득해도 통하지 않는데다 아이들을 만나면 학교측으로부터 '선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나서지 못한다""고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권위를 잃어버린 교사들은 이미 학생들을 포기한 것이다. 교육 관리의 태도는 한술 더뜬다. 서울시교육청 과학기술과의 최덕모 장학사는 ""사학운영은 재단 소관이기 때문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아예 귀찮다는 자세를 보였다. 다른 관리는 ""우리가 파견한 관선이사마저 사법부에 의해 취소당했다""며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이상 없다""고 말했다.
사태해결의 열쇠를 쥔 재단과 설립자(김일윤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오로지 법의 논리(법적 하자의 유무)로만 사태를 풀려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불신감만 팽배해진 아이들
1년간의 파행은 학교운영 전반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장기간의 수업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방학도 반납했지만, 여전히 대다수 학생들이 수업일수(1백47일)를 채우지 못했다. 유급조치가 내려져야 하나, 학교측은 올 여름 방학 때 수업일수를 보충한다는 조건으로 학생들을 전원 진급시켰다. 또한 새 학기가 시작되는 4일부터 경기여상 학생들은 때아닌 기말고사를 치러야 한다. 역시 파행이 빚은 결과다.
텅빈 학교에 남아 시험을 준비중인 2학년 학생은 말했다. ""교실문 바꾸고, 페인트칠 한 것 말고는 1년동안 좋아진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교육청에서 난방시설도 들여놨지만 추운 건 마찬가지 구요."" 이 학생은 ""어서 빨리 정상수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도 별로 기대는 안하는 눈치다. 어른들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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