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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현대판 노예선’ 문제 즉 선상폭력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던 것은 91년 국회 국정감사 때였다. 나는 그 당시 선상폭력문제와 관련하여 세상에 나올만한 보고와 논의는 거의 다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90년부터 불과 1년 반 사이에 해상 사고로 인한 사망 실종자가 5백명을 넘었으며, 그 대부분의 사인이 분명하지 않다는 보고가 있었고, 선상폭력을 고소해도 선장이 구속되거나 처벌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보고도 있었다. 어업근로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의 적용도 없으며, 일단 원양 어선을 타면 하선할 자유도 없다고 했다. ’보합제‘라는, 선주와 선장 사이의 성과 분배방식의 존재가 선장으로 하여금 생산고를 높이기 위한 폭력적인 노동착취의 길을 치닫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사실도 국회에서 지적되었다.
1년 6개월새 사망 실종 5백명
그만큼 사회문제화가 되었으면 웬만큼 정신도 차렸겠거니, 어업근로자들의 처지가 약간은 개선 되었겠거니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상식이었을 것이다. 사실 한동안 선상폭력 소식은 뜸했다.
그런데 이번 페스카마호 사건은 ‘노예선’ 항해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 살인적인 노동조건 때문에 한국인이 꺼려하는 ‘노예’의 자리에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찢어지게 가난한 인도네시아인이나 조선족이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선상폭력 소식이 한국 국내에서 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페스카마호 ‘노예선’ 사건
최근 <인권하루소식>은 3회에 걸쳐 페스카마호 사건 피고인의 한사람인 전재천 씨의 탄원서를 연재했다(3월 19, 20, 22일자).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나의 마음을 ‘착찹’ 그 자체였다.
하루에 작업 21시간, 흐리멍텅해진 정신에 매일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몽둥이, 쇠파이프가 쏟아졌다. 조선족은 갖은 인간적 모멸 속에서 두 달 동안 견디다 못해, 끝내 조선족 5명은 하선을 결의하지만 선장은 곱게 하선 시켜주지 않는다. 그들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을 마셨다. “술이 들어가니 가슴에 쌓였던 원한이 눈물이 되고 눈물이 악이 되었”으며 마지막 벼랑가에서 조선족 선원들은 죽음을 생각했다. 죽는 마당에 ‘너 죽고 나 죽자’로 막가는 것은 정해진 이치였는지도 모른다.
부산지방법원은 작년 말 페스카마호사건 피고인 6명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이 사건 범행을 통하여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였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당시에 큰 충격을 받은 우리 한국사회는 ‘6명 전원 사형’이라는 판결에는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조선족에게 ‘온정’ ”을 베푼다는 시민운동도 이런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한창 진행중인 항소심 공판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없다.
죽은 선장을 비롯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도 나는 참으로 우리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91년 국정감사의 결과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단지 고통의 전가[轉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목숨을 잃을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분명 미련한 것이다. 그러나 11개라는 목숨을 잃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차라리 처참하기까지 하다.
상품의 ‘보편적’인 유통을, 따라서 가치의 ‘보편’화를 지향한다는 자본주의경제체제는 동시에 최대이윤을 실현하기 위한 임금의 중층적 차별구조를, 따라서 항상 차별과 멸시를 받고 저임금으로 일하는 소수그룹을 필요로 하는 정신분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맨 밑바닥’에 대한, ‘밑바닥’을 겨우 면한 자들의 추잡하게 비뚤어진 우월감은 언제나 이 구조의 ‘모세혈관 부위’에서 이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원양 어선 사관들의, “거러지 같은” 외국놈에 대한 비뚤어진 우월감은 자본의 최대이윤 생산에 분명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최대이윤이 가져온 차별구조
부산지방법원은 그 판결문에서 경쟁을 배제하는 중국의 사회주의체제에 익숙해진 피고인들이 조업을 독려하는 한국인 선원들의 폭력을 인간적 모멸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나는 묻고 싶다. 그럼 인간적 모멸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생산을 올리기 위한 ‘독려’로써 쓰여질 때 폭력은 인간 모멸이 아니게 된단 말인가?
조선족 선원들은 한번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중의 어느 한사람도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따위 저열한 표현으로 남을 평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페스카마호 선장과 사관들, 그리고 함부러 사형을 입에 올림으로써 부산지방법원 판사가 조선족 선원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 한 일은 있어도 조선족 선원들이 스스로 포기한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정작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이 비뚤어진 무한경쟁의 체제에 길들여져 인간모멸을 인간모멸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자신에 다름이 아니다.
페스카마호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사형을 저지하는 일이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첫걸음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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