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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폭행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 민병일 씨의 장례식이 1일 치뤄졌다. 그러나, 경찰은 “노제를 허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10시간 동안 운구행렬을 가로막음으로써 유족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못질을 했다. 유족들은 운구행렬이 가로막히자 그 자리에서 오열했으며 일부는 실신하기도 했다.
민병일 비상대책위원회와 유족들은 민 씨 사망 46일만인 1일 「민주열사 고 민병일 민중장」으로 민 씨의 장례를 치루기로 하고, 이날 오전 9시 수원 아주대병원 영안실에서 발인을 마쳤다. 이어 민 씨의 운구는 오전 10시 수원역 광장 영결식을 거쳐, 오후 1시 30분 신갈오거리에서 노제를 지낸 뒤, 장지인 마석 모란공원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당초 경찰은 노제를 허용할 방침이었으나, 1일 아침 갑자기 노제를 봉쇄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아주대학교 앞 도로에서 전경차 10여 대와 무장한 수백 명의 전투경찰을 동원해 민 씨의 운구행렬을 가로막았으며, 수원역 광장에도 전투경찰을 배치해 영결식 준비를 봉쇄했다.
운구행렬이 가로막히자 민병일 비상대책위 소속 회원들과 대학생 2백여 명은 아주대학교로 모여 항의집회를 가졌으며, 경찰이 봉쇄를 푼 저녁 7시경 신갈오거리로 이동해 노제를 가진 뒤, 마석 모란공원에 민 씨를 안장했다.
이날 장례를 치룬 민병일 씨는 지난 2월 2일 파출소에 노점 집기를 찾으러 갔다가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진 후, 13일 만에 숨졌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경찰은 “민 씨가 뒤로 넘어져 두개골이 깨졌다”고 주장한 반면, 유족측은 “경찰의 폭행에 의한 두개골 골절”이라며 관련 경찰의 처벌을 촉구해 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두개골 골절이 외부 가격에 의해 일어났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부검결과 민 씨의 뒷머리에서 상처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앞머리에 18.5cm나 되는 골절 및 이마와 정수리 부근에 4, 5개 정도의 멍(피하출혈)이 발견되어 유족측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현재 사건발생 두 달이 지났으나 검찰 수사에 별다른 진전은 없으며, 가해 용의자인 채규근 상경과 백용운 경장은 용인경찰서에서 대기발령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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