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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에 나라가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이미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상업화된 '섹스'와 함께 제국주의의 식민지에 대한, 혹은 독재정권의 대중에 대한 우민정책의 일환으로 이용되면서 대중의 탈정치화를 대규모로 진행시켜왔다. 지금 우리는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지를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수만 명 단위로 전국 주요 거리를 메우며 열광하는 빨간 티셔츠의 물결은 우리 사회의 풀뿌리 민주주의도 노동자·노점상의 생존권도 집회·시위의 자유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우리는 '붉은 악마' 현상이 바야흐로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붉은 악마' 현상을 두고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의 망발이 그칠 줄을 모른다. '레드 콤플렉스의 극복'이라느니, '6월항쟁에 나타난 민중 에너지의 재현'이라느니, 심지어는 '우리 민족의 단결력과 애국심'을 과시했다는 따위 발언은 지식인의 진정한 소명을 벗어 던진 추악한 아부에 지나지 않는다. 감히 말하건대 '붉은 악마' 현상에는 넘실거리는 국가주의와 맹목적 애국심이 있을 뿐이다. 정의에 대한 열망이 아닌 승리에 대한 열광이 있을 뿐이며, 체제에 대한 순응과 정치적 무관심과 인간의 주체성을 죽이는 군중심리가 있을 뿐이다. '붉은 악마' 현상은 파시즘을 가능케 하는 병적인 현상이다.
'붉은 악마' 현상은 결코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지배세력이든 자신의 정통성을 과시하고 대중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한 대중동원은 필수적이다. 군사독재 시절에 그 동원은 민주인사, 언론, 국민에 대한 강제와 공포로써 이루어졌다. 그러나 모든 통치가 비판세력의 대규모 체제내화를 통해 진행되는 지금, 대중동원은 탄탄한 기득권 세력으로 성장한 거대 매스컴을 통해 이루어진다. 거대 매체가 국민에게 국가주의를 부추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하겠는가?
16강 진출로 인한 경제적 부수효과가 16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코리아 에너지에 의한 '국민통합'의 효과까지 해서 선진국 진입이 눈앞에 있다고 법석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 속에 국가주의의 유령과 힘겹게 싸우면서 이 사회에 인권을 실현해 나가야 할 우리는 월드컵과 '붉은 악마'가 이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10년 이상 정체시켰다고 주장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더 이상 부추기지 말라.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필승'이 아닌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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