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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부터 지난한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거쳐 군부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도 벌써 1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민주주의와 민주정부, 이는 민주주의의 전 사회적 영역으로의 확대뿐 아니라 지역화, 지방화의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민주주의를 별로 발견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남한사회의 어떤 지역, 어떤 영역이든지 간에 그 권력의 뿌리를 캐 들어가 보면 그 권력의 기반은 주로 일제 식민지 지배나 한국전쟁 전후의 좌우익 갈등의 산물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전후의 격동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운동세력이 소멸된 정치 사회의 공간에는 친일인사와 관료 및 경찰, 극우반공 청년운동 세력, 권력에 기생한 기회주의적인 인사들이 조직한 각종 관변조직들이 차지하였다.
이들은 대체로 반복되는 대선과 총선, 지자체 선거에서 자신의 후보를 정치권으로 진출해내고 지난 50여 년 동안 물적인 기반을 확보하였다. 오늘날 이들은 이제 중앙과 지역을 아우르는 사업체와 언론, 각종 학교의 이사회, 단체장과 지방의원, 관변단체 등에 진출하여 확고한 권력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 정치사회의 공간이 이렇다보니, 최근의 정당들의 개혁과정 과정에서 보여지는 한나라당의 토씹새격문과 민주당의 살생부의 갈등들은 이것과 크게 무관하지 않은 수구 권력들의 마지막 저항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토대 위에 오늘날 농촌의 경우에는 말 깨나 하는 젊은 사람들이 소위 근대화의 과정에서 다 도시로 떠나버려 지역내의 비판적인 소리조차 만들어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대도시 지역은 이제 인구 과포화 상태가 되어 지역과는 아무런 연고도 갖지 않는 떠돌이 시민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파트 아래 위층에 누가 사는 지, 집 주변에 러브호텔과 같은 위해시설이 생기거나 말거나 지역 일에는 도대체 무관심한 상태로 살아가다 보니 지역을 그저 잠자는 집이나 아이들 학교 다니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조차 소속감과 유대의식을 갖지 않은 모래알과 같은 개인들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신적인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여 떠돌고 있는 현대판 유목민들과 같은 것이다.
정치사회의 비민주화는 이러한 환경과 풍토에서 비민주, 반인권, 반환경, 관료주의와 효율지상주의가 만들어지고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잘못된 힘을 가진 자들이 정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아직도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민간인학살과 같은 과거청산 문제에 대해 중앙정부나 국회, NGO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지난 100년 간의 중앙지배의 역사를 극복하는 것과 아울러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정립한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정치 사회의 공간이 바르게 자리 매김을 하려면 우선적으로 민간인학살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이고도 역사적인 당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영일 씨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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