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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끌로드 베리/ 주연: 르노, 제라르 드빠르듀/ 94년작
헐리웃의 물결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가 정부예산 수십억을 들여 자존심을 걸고 만들었던 영화 <제르미날>이 <쥐라기 공원>의 위광에 맥을 못추고 당시 국내 상영에서 보름만에 간판을 내렸다. 프랑스의 양심이 1백년을 지켜왔다면 우리에게는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80년대가 잊혀졌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했건만 이제는 아무도 부르지 않는 그 낯선 이름을 서울 하늘 아래서 끌로드 베리가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 아니면 죽음을!”
거짓말 조금 보태서 영화의 절반은 빵 먹는 장면이다. 1백년 전 제르미날의 인간에게는 빵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40도가 오르내리는 지하 갱도에서 땀과 탄가루로 범벅이 되어 빵 한 조각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탄광노동자들과 호화스러운 저택에서 수입한 게살을 뜯는 자본가의 반목이 영화의 큰 흐름이다.
영화는 에밀 졸라의 탁월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수백억을 투자한 덕분에 완벽한 세트로 1백년 전 보뢰 수갱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대대손손 광부들의 애환이 서린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그 피땀을 등에 업은 자본의 보따리 보뢰 수갱이 4백미터 지하로 몽땅 쏟아져 내린다. 노동자의 한서림도 자본가의 탐욕도 함께 매장되는 순간이다.
영화의 치열함은 1백년의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자본의 총칼 앞에 들이민 마유(제라르 드빠르듀 분)의 앞가슴.
“쏴봐라! 어서 쏴봐, 이 개자식들아!” 겹겹이 쌓인 노동자의 울분을 내밈이요, 일한만큼 몫을 찾겠다는 정당한 부르짖음이다.
에티엔(르노 분)이 앞서 깨어난 자의 고통과 권력 앞에 절망스러운 무력감을 드러내지만 붕괴된 탄광 속에서 20일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나와 죽음을 삼킨 듯한 하얀 저 눈이 내일을 꿰뚫어 본다. “파업은 실패다. 그러나 빵을 쥐고 주인 행세를 하는 몇 안되는 무리들과 수천만 노동자들이 대면할 그 날은 반드시 온다.”
남편을 잃고 자식도 잃고 끝끝내 재업을 반대하던 마유의 아내, 스무살 시절부터 갱도를 안내려 가던 노동자의 어머니 마유드(미유 미유 분)가 사십줄에 다시 수갱을 탄다. “남편도 없다. 자식도 없다. 희망도 없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나는 내려간다.” 그것은 모순된 시대에 살아남은 자의 절망적인 몸부림이다.
어느 민족에게나 피로 점철된 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의 오늘이 있기까지 피맺힌 노동자들의 절규가 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영화를 프랑스 정부가 수백억의 제작비를 들여 앞장서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부러움이 아닐 수 없다.
【전경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영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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