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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용불안 정도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높은 것으로 드러나, 그간 노동 유연화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노무현 당선자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아래 인수위)의 노동정책 기조가 변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달 30일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노동의 유연성 정도를 자체 조사한 결과, 한국이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새로운 일자리 기회 △노조의 힘(단체협약의 효력 정도) △해고의 용이성 △법정휴가일수 등 4가지 항목에 따라 '유연성'이 가장 높을 경우에는 1점을, '경직성'이 가장 높을 경우에는 10점을 매겨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방식에 따르면 총점이 낮을수록 노동 유연성이 높게 된다. 조사 결과, 한국은 13.0점으로 이탈리아(36.40점)나 프랑스(32.25점)에 비해 노동의 유연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노동 '유연성'이 높다는 것은 곧 고용불안이 심하고 비정규직화가 심화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사용자측의 이해를 대변하는 매체로서 평가되는 <포브스>지의 조사에서조차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한국의 경우 강성노조들 때문에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높다'는 재계나 인수위측 주장이 사실무근임을 입증한다. 이번 조사가 주로 장기실업률이나 노동법 조문에 근거하여 이루어져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사업장 노동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점까지 감안하면, 노동 유연성의 정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논평을 통해 ""그동안 전경련과 노 당선자는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 온 셈""이라며, 노동 유연화 정책의 전환을 촉구했다.
노 당선자와 인수위가 '노동의 유연화'를 고수하면서도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동시에 정책방향으로 제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주노총 박강우 정책국장은 ""비정규직이 당하는 차별은 근본적으로 고용불안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 만큼,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노동의 유연화는 함께 갈 수 없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노동 유연성이 높아질수록 비정규직 차별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4일 인수위 내부 차원에서 진행된 '노동정책 토론회'에서도 고용보장 문제는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됨으로써, 새정부의 노동정책 전망을 어둡게 했다. 고용보장을 위한 획기적 정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비정규직 차별 해소'는 노동 유연화를 더욱 촉진하기 위한 장식적인 구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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