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획: 안기부와 인권 (3) 안기부의 피해자
내용
"“권두영 씨는 재판 내내 지나치게 겁을 내면서 어찌 할 줄을 몰라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했고 나중에는 왜 그렇게 나약하게 행동 하냐며 권씨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권 씨 사건은 별 사건도 아니었고 실제로도 그리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1심 구형을 앞두고 구치소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92년 당시 권두영 씨의 변론을 담당했던 임종인 변호사는 5년 전 구치소 독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권두영 씨(당시 64세, 전 민중당 고문), 그는 미국 영주권을 가진 교포로 92년 8월말 전 민중당 대표 김낙중 씨와 함께 안기부에 의해 간첩 및 간첩 방조혐의로 구속되었다.

“권 씨는 안기부 발표와 달리 간첩 활동을 하지 않았다. 단지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교포로써 북한 상대로 사업을 전개할 목적으로 두 차례 방문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사업 방문에 대해 안기부는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김낙중 씨 간첩 사건에 함께 묶어 발표하였다. 그러나 권 씨는 김낙중 씨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안기부는 사건을 크게 부풀리기 위해 이를 묶어 발표하였고 이 과정에서 권씨가 희생당한 것이다.” (임종인 변호사 증언)

93년 1월 15일, 대선의 요란한 잔치는 끝나 김영삼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약 1달여 후, 그 풍요로운 잔치를 위해 희생당해야 했던 권두영 씨는 “간첩죄를 적용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며 구치소 감방에서 겨울 내의로 화장실 창살에 목을 매 숨졌다.

“단순한 사업 목적으로 북한을 다녀온 죄 밖에 없는데 나에게도 간첩죄가 적용된 것이 기가 막히다. 간첩죄가 확정돼 자손들에게 대대로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 겁난다.”
권씨가 가족들에게 자살하기 전날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억울한 간첩죄에 죽음으로 항변한 권씨

안기부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간 이들의 삶은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진다. 심지어 연행되는 피의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혐의로 연행되는지 조차도 모른다. 
피의자 연행시 반드시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미란다 원칙을 안기부 수사관이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현 정부 들어 안기부측 관계자들은 “과거와 달리 오늘날 안기부가 예전의 인권유린이나 공안조작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과거 중정, 또는 안기부에서는 인권유린과 공안 조작사건을 자행하였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 인권유린과 공안조작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재심이 받아 들여지거나 또는 그 가해자들이 처벌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찾아 볼 수 없다.

중정부장 출신 김형욱 씨의 회고록에서 밝혀진 ‘동백림사건’이나 ‘인혁당사건’ 등은 오늘날 그 사건이 조작되었음이 간접 확인되고 있다.

또한 73년 발생한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과 74년 유신 반대 활동을 부풀린 민청학련사건 등은 대표적인 인권유린 내지는 공안조작 사건 등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의 명예는 회복되지 못했으며 진실조차 밝혀진 바도 없다.


국가 기밀을 위해 피해자가 죄인으로..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안기부의 주장과 달리 인권유린이나 공안사건 조작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96년 12월 5일 서울 신당동에서 타인의 영장을 제시하는 안기부원에 의해 강제 연행 당한 김형찬 씨(26 경희대 수원교정)는 이들에게 자백을 강요받으며 집단폭행을 당하던 중 공포와 두려움 끝에 분신자살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안기부는 분신한 김형찬 씨에 대해 아무런 법적,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혐의사실은 이적표현물 소지다. 그러나 김 씨는 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객관적으로 이러한 안기부 주장이 허위임을 입증하는 증언도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인 자료는 필요없다. 

오직 안기부의 의지에 따라 피해자가 죄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96년 12월 24일, 김 씨의 가족은 김 씨를 폭행하고 불법으로 체포 감금한 안기부원 4인을 상대로 고소 및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 재판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가해 안기부원 4인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담당 변호인과 내무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안기부장을 상대로 가해 수사관의 이름을 비롯한 일체의 신상공개를 요구하였으나 안기부장은 “국가 기밀상 요원들의 이름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한마디 말로 이를 묵살해 버렸다.

‘국가기밀을 위해’ 라는 명목 하에 그들이 지켜주고 보호해야할 최종 목적이며 가치인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유린하는 야만스러운 공포 정치, 독재권력의 속성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내곡동 헌인릉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웅장하게 세워진 국가안전기획부. 61년 중정으로 출발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진 이 폭압 기구를 맴도는 숱한 피해자들의 한 맺힌 원한과 그 가족들의 통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6306
생산일자 1997-06-26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정기간행물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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