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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아침 11시, 지하철 2호선 문래역 출구를 나가자 서울의 여느 거리와는 달리 외국인들이 확연히 많다 싶더니 곧 길고 긴 줄을 만날 수 있었다. 자진신고를 위해 나온 이른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다.
자진신고를 위해 나온 이주노동자들은 새벽 일찍 나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뿐더러 화장실도 잘 못 가고 줄이 흐트러지면 경찰로부터 질책을 듣곤 한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터다.
중간중간 전경이 서서 줄을 똑바로 서라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말하는 모습이 학교 시절 권위주의적이었던 '애국조회'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도 다리가 아프면 좀 앉아 있으라고 말하는 전경도 간혹 눈에 띄었다.
11시가 좀 넘은 시각, 문래동 자진신고 접수처 정문 앞에선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등이 속한 '이주노동자 탄압분쇄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공대위' 투쟁 선포식이 열렸다.
앞에 나온 발언자들은 하나같이 ""외국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평등한 대접을 받길 원하듯, 우리사회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일하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줄 서 있는 걸 보니, 한국에 사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또 집회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들과 관련 △추방을 목적으로 하는 자진신고 철회 △단속 추방 중단 △노동비자 부여를 정부에 요구했다.
자진신고 접수처의 길 건너편엔 자진신고를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각자 갈 길을 가지 않고 서 있었다. 집회를 구경하는 듯 했다.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년 내에 나갈 순 없어요""
""감동적이예요."" 식당일을 한다는 한 중국동포 여성은 집회에 대한 느낌부터 서슴없이 말했다. 그는 이날 자진신고를 위해 새벽 4시에 나왔다. 자진신고를 하는데 약 7시간이 걸린 셈인데 그는 그래도 자신은 하루만에 모든 게 끝나 운이 좋은 거라며 ""줄 서는 게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1년 내에 집에 갈 순 없는데, 신고 안 하면 나중에 벌금 내야 하니까 신고를 안 할 수 없었다""고 말하길래, 그럼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그는 ""상황을 봐서 가능하면 안 가고 싶다""고 한다. 우리말을 잘하면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답답하다는 그는 건너편의 집회에서 좀체 눈을 떼지 못했다.
""1년 뒤에 다시 비자 연장할 수 있는 거 아녜요?""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이란 출신의 이주노동자는 자진신고 후 1년 내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한국 사람도 좋고, 일도 좋아요. 계속 한국에서 일할 거예요.""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이 좋았다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베트남 출신 한 이주노동자는 자진신고를 하지 않았다고만 할 뿐, 다른 이야기는 더이상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사실 유독 이주노동자들의 체류와 노동에 대해 시시콜콜 궁금해하는 것 역시 그들에 대한 차별일 수 있을 테다.
""1년 후 26만 이주노동자를 내보내면, 이주노동자들이 담당했던 한국의 산업 부문도 휘청할 거예요. 한국사회 스스로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한 필리핀 이주노동자는 자신도 집회에 동참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가죽 공장에서 일하는 또다른 필리핀 여성노동자는 ""못 받은 임금이 많다""며 ""그 만큼 더 오래 이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1년 안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내보내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어 보인다.
""외국인은 한국의 정책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정부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의견에 계속 귀를 막고 있는 한 관련 제도나 상황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의 의견에 귀 열어야
한편, '이주노동자 탄압분쇄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공대위'는 올 19일 2시 서울 명동성당 부근에서 '일제등록철회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 2차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지난달 21일 집회 때 보여졌던 것처럼 '집회에 참가하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모두 단속 추방시키겠다'는 정부의 구태의연한 발상이 또 되풀이될지 그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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