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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인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29일 자신의 '전향 무효'를 선언한 장기수 김영식 씨가 기자회견을 마치며 던진 한마디다.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 전향 공작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파괴시키는가를 극명하게 들려주는 외침이다. 김씨는 이날 회견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고문이 행해졌다""며 그의 삶을 짓누르고 있던 국가폭력을 고발했다.
그의 고백 속에는 73년 당시 '전향공작전담반'에서 활약했던 8명의 실명이 그대로 나와있다. 이는 그가 지난 28년 동안 전향 공작의 악몽을 단 하루도 떨쳐버릴 수 없었음을 반증한다. 그의 양심선언은 전향공작에 따른 인권파괴를 회복해야 한다는 절실한 바램이다.
전향공작은 '지옥'에서 행해졌다
김 씨는 73년 10월부터 2개월에 걸친 전향공작에 못 이겨 전향서에 날인했다. 그가 당시 복역하던 교도소는 장기수들 사이에 '지옥'이라 불리던 광주교도소였다. 즉 그 '지옥'은 '전향공작 전담반'이 폭력사범 재소자들까지 앞세워 전향공작을 한 것으로도 악명 높다. 일명 '떡방'이라 불린 이 재소자들은 같은 재소자 처지인 사상범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전향을 종용했고 그 방법 또한 비인간적이기 그지없었다. 일단 구타가 시작되면 수 시간을 지속하는 것이 보통이고, 온몸을 고문틀에 묶은 다음 물고문까지 자행했다. 입과 코를 천으로 막고 주전자로 수십 리터의 물을 얼굴에 들이 붇는 것이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더하면 고춧가루고문이 된다. 이런 생활 두 달만에 그는 교도소 교무과에 끌려가 이른바 '전향'을 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에 따르면 ""72년까지 6∼7백명에 이르던 비전향 장기수가 2, 3년에 걸친 무차별적인 전향공작으로 약 100여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또 그는 ""이러한 교도당국의 전향공작 뒤에는 법무부와 중앙정보부가 있었다""며 ""73∼75년 사이의 전향공작은 몇몇 교도소에서만 생긴 일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치밀한 인권유린 사건""이라 말한다.
전향고문, ""국가에 의한 치밀한 계획""
72년 당시 교도소에는 만기출소를 앞둔 비전향 장기수들이 많았고, 정국은 7·4 공동성명, 10월 유신, 김대중 납치 사건 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런 때 장기수들이 대거 출소하면 사회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는 판단 속에 전향공작은 수행됐다. 이처럼 전향 공작은, 정권의 보호를 위해 인간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임의적으로 파괴한 반인권적 대사건이다.
김씨는 전향 후의 괴로움은 물론이고 출소해서도 ""지나온 일을 생각하며 괴로워 잠 못 이루는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고 한다. ""가족과 젊어서 이별하고 청춘을 고스란히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양심뿐이었는데 이것마저 빼앗겼으니 '나는 버러지가 됐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괴로워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 옥중사망 조사개시
이런 가운데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가 ""비전향장기수들의 옥중 의문사를 조사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지난 20일 75건에 대한 '조사개시' 결정을 하며 비전향장기수 옥중 사망사건 5건도 여기에 포함했다. 그 5건은 박융서(74년 대전), 손윤균(76년 대구), 최석기(80년 대전), 변형만·김용성(80년 당시 청송보호감호소) 사건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 황인성 사무국장은 ""진정 내용에서 이들에 대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는 드러나지만 민주화운동과의 관련 여부가 쟁점이었다""며 ""그러나 이들이 권위주의적 통치체제에 항거하고 민주질서를 회복하려 한 점이 인정되어 그 수감 경위나 사상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국가가 저지른 인권침해는 그 인권의 회복 또한 국가의무라는 원칙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도 ""변형만·김용성 씨의 경우 '비전향'이라는 이유로 형기를 마치고도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 징역 아닌 징역을 산 사람들""이라며 ""직접적 전향공작에 의해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그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싸우는 과정에서 사망했으므로 넓은 의미의 전향공작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생존해 증언하는 피해자들이 있다
그러나 강제 전향공작은 죽은 사람들만의 문제는 절대 아니다. 김영식 씨 경우같이 전향공작의 피해를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 씨의 양심선언 기자회견장에는 비슷한 처지의 장기수들이 10여 명 함께 했다.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은 ""이들 중 상당수가 가까운 시일 안에 점진적으로 '전향 무효' 선언을 하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더듬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대부분이 북송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전향공작 전담반의 고문행위 등에 대한 증언이 더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권회장은 또 ""현재 북송을 원하는 전향 장기수는 약 30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규명 꼭 해야한다
그 자신 참혹한 전향공작을 겪기도한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는 ""그들을 북송하더라도 전향공작 자체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은 남는 것이므로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도 그의 책 『한국과 분단사회』에서 ""사상범에 대한 '전향공작'만큼 어떠한 법조문이나 기록물에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자아내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통제체계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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