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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일할 권리가 있다.” 4월 10일 공장 입구에 드러누워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외침이다.
그렇다. ‘일할 권리’는 헌법(32조)이 보장하는 권리이며, 우리나라가 1990년 비준한 ‘유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아래 사회권조약)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는 ‘인권’이다. 사회권조약 6 7 8조는 ‘노동권’을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의 하나로 규정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국가가 “보장하겠다”고 선언하는 구호에 그쳐서는 안되며, 실제적 구체적 방법으로 실현돼야 할 ‘적극적 인권’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몰아치는 정리해고, 쫓겨나는 노동자들
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나라는 구조조정의 광풍에 휩싸였고, 노동자들에게 구조조정은 곧 ‘정리해고’를 뜻했다. 지난 2월 대우자동차 노동자 1,750명에 대한 정리해고나 지난해 연말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7,000여명을 무더기로 계약해지 한 사건은 구조조정 흐름 속에 나타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회안전망이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의 박탈은 ‘생존권 박탈’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불안정고용과 장기실업은 그 자체로 ‘인간존엄의 위기’로 이어지고, 노숙자의 증가와 자살, 가정파괴의 확산 등 각종 반인권적 사회현상을 동반한다. ‘구조조정=반인권’의 등식이 성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권조약 6조는 “국가는 개인이 선택한 노동으로 삶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를 밝히고 있으며, 조약당사국인 우리 정부는 그 의무를 이행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국민들의 ‘일할 권리’를 지켜주기는커녕, 오히려 ‘경제회생’이라는 미명 아래 ‘일할 권리’의 박탈을 적극 조장해 왔다. ‘구조조정 완수’만을 거듭 강조하는 대통령의 언급에서 ‘노동과 생존의 권리’를 적대시하는 섬뜩함마저 느끼는 것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수 만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하고, 대학마저 ‘예비 실업자 양성소’가 돼 버린 현실에서 ‘누구나 원하는 일을 할 권리가 있다’는 사회권조약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밀리고 밀리는 노동3권
‘지난해 롯데호텔 사태와 올해 대우자동차 사태’에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바로 피 흘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지난 95년, 한국상황에 대한 1차 심의를 마치면서 “조합원들의 평화로운 단체행동에 대한 경찰의 공격에 대해 대단히 ‘놀랍게’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폭압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권조약 8조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이른바 ‘노동3권’에 대해 국가의 보장 실현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노동권의 기초가 되는 노동3권조차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지난 3월 ‘개악’된 노동법이다. 개정 노동법은 2002년부터 허용될 예정이던 개별기업 차원의 복수노조를 다시 5년 간 유예시켰다. ‘조금만 참으면 우리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는 희망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노력했던 노동자들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교섭권도, 파업권도 없는 이들에게 복수노조 허용을 다시 유보한 것은 “노예 생활을 5년만 더 하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권조약은 그밖에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권리’,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받을 권리’, ‘합리적인 노동시간 동안 일할 권리’ 등도 ‘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존중하며 실현시키고자 노력해야 할 의무사항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 통계들은 한국사회에서 천대받는 노동권의 위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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