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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낮 방배4동. 좁은 골목마다 폐타이어 더미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주민들은 머리띠를 둘렀다. 바리케이드 너머 마주 서 있는 용역들과의 팽팽한 신경전 속에 귀에 설지 않은 구호 소리가 들린다.
방배4동 재건축지역에 철거반이 들이닥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날도 아무런 예고없이 새벽 5시반 포크레인이 들이닥쳤다. 빈 집 서너 채가 포크레인에 의해 쓰러졌고 주민들은 뒤늦게 철거 저지 투쟁에 나섰다. 동병상련의 서울지역 철거민들이 속속 방배4동으로 찾아온 덕에 이날 철거는 중지됐다.
방배4동 재건축지역은 일반 재개발지역과는 차이가 있다. 이곳은 상습침수지역이라는 이유로 가옥주들이 재건축을 신청한 곳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건 다수의 세입자들은 갈 곳 없이 쫓겨나게 될 신세에 처했고 8개월째 철거반대투쟁을 진행해 오고 있다.
10여년간 이곳에 살았다는 세입자 권병규(44)씨. 그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보금자리만 마련해 달라”고 말한다. 수년간 마을에 살아온 주민으로서 정든 터전에 계속 사는 것은 자신의 권리라는 게 권 씨의 주장이다.
곧 이사를 간다는 한 세입자는 “처음부터 이사비용도 없이 무조건 나가라고만 하니 문제가 어렵게 풀리고 말았다. 가옥주들의 욕심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아온 것이다. 나는 이사갈 집이라도 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정말 갈 곳 없는 사람들이다”며 안타까워 했다.
당초 5백여 세대이던 세입자 수는 한 달 전에 70여 세대로 줄더니, 이날 모인 사람들은 25세대에 불과했다. 한 세대 한 세대씩 떨어져 나가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권 씨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를 힘으로 누르려고만 한다면, 이제는 대항할 수 밖에 없다.”
주민들과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용역직원들, 그 사이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돼 있어 충격을 준다. 비록 철거를 위해 동원된 처지이지만, 이들 마음도 결코 가벼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용역원 김(29)씨는 “철거하러 오는 것인지 몰랐다. 일하더라도 즐거워서 하는 일이겠느냐. 우리도 찝찝하지만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한다”며 눈길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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