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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교수)
토론자:
김형태(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장)
조흥식(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래군(<인권하루소식> 편집인)
일시: 95년 10월9일(월) 오후1시
장소: 기독교회관 귀빈레스토랑
위기의식 극복, 인권영역 확대 의미
사회자: 그러면 이상으로 미흡하나마 인권현실에 대한 진단을 마치고 이제 인권운동의 현실을 짚어볼까요. 우선 종합적인 진단을 김형태 변호사께서 내려주시지요.
김형태: 인권상황의 답보와 달리 인권운동은 보기에 따라서는 발전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김영삼 정권 초기만 해도 인권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위기의식은 어느 정도 극복된 상태입니다. 오히려 지난 몇년간 인권운동은 외국인노동자, 사회복지, 주한미군범죄 등의 문제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제법 위치를 잡아가며 분화되는 단계에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권운동은 특히 유엔이 최근 들어 매년 개최하고 있는 인권관련 대규모국제회의 및 국제인권조약에 따른 정부보고서제출에 적극 대처하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제회의 참가로 국제연대의 기틀을 다지고 인권운동차원의 반박보고서를 작성하고 제출함으로써 인권현황을 전면적으로 점검, 비판, 전망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인권하루소식이 작지만 고정적인 독자층을 확보한 채 벌써 지령 500호를 맞고 있다는 사실도 인권운동의 성과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인권이란 말이 과거에는 일부 양심수를 연상시키는 매우 한정적 의미로 쓰여왔다면 이제는 훨씬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가치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는 점도 인권운동의 성과로 지적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국제인권조약 및 기구의 적극적 활용 및 국제인권회의에의 적극적 참여로 대표되는 국제인권운동의 활성화 현상이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하겠습니다. 정권도 인권을 국내적 현상이 아닌 외교적 현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판에 인권운동마저 그러한 경향을 따라가게 되면 큰 일이거든요.
사회자: 지난 2년여 동안 인권운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역시 리우 환경회의, 비엔나 인권회의, 카이로 인구회의, 코펜하겐 사회개발회의, 북경 여성회의, 이스탄불 주거권회의 등 유엔주최 인권관련 국제회의들에 대한 대규모 참여와 국제인권조약들에 따른 반박보고서 작성운동을 통해 인권운동의 활성화와 연대화를 이뤄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밖에도 동티모르독립운동가나 아르헨티나 오월광장 어머니회를 초청하는 등 적극적 국제연대에 뛰어든 것도 특기할 만합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야기하신 것과 같이 국내인권상황에 별 진전이 없는 가운데서 이런 모습만 두드러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국내인권운동이 전략적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채택한 그런 면도 있지만 국내인권운동이 과연 이렇게 국제화에 열을 쏟아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권이 국제적 관심사가 되었다고 해서 국내인권문제를 외국에 나가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인권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국제화보다는 인권피해현장에의 밀착화가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공안인권운동분야에서의 성과와 과제를 알아볼까요.
인권단체 집요한 뒷힘 돋보여
박래군: 공안인권운동과 관련해서는 서로 다른 두가지 측면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이전에 양심수석방운동이 상당히 큰 호응을 얻고 전국민적이고 정치적인 관심사로 떠올라 일정정도 정권에 압력을 행사했었던 반면 김영삼 정권 들어와서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여론과 언론의 주요 관심사에서 멀어진 채 작은 목소리가 되었다는 것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에 일각에서만 주장하던 것들이 이제 널리 확산되어 무리 없이 인권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기수 문제는 80년대 말에서 90년초에 겨우 조심스럽게 얘기하기 시작한 것인데 요즘 장기수 석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공안인권운동분야에서는 특히 민가협의 목요집회가 100회 이상 진행되고 있는 점이나 천주교인권위에서 지속적으로 장기수 재심청구운동을 벌이고 있는 등 과거에 보지 못했던 집요성이 돋보입니다. 그동안 인권운동단체들의 큰 약점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뒷힘이 부족하다는 점이 꼽혔는데 이 점에서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단체간 연대의식이 나름대로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 힘있게 공동 대처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뭔가 하긴 하는데 필요한 후속작업등을 진행하지 못해 자꾸 이벤트성으로 끝나버리니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정권에 밀리게 되는 현상이 반복되는데 이런 것들이 극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자: 지난 몇해간 인권운동의 관심사를 자유권에서 사회권에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런대로 설득력을 갖게 되었고, 특히 국제노동기구 등 국제기구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국내적으로도 국민생활최저선 확보운동을 전개하고 공익소송을 통해 사법적 대응을 모색하는 등 비교적 활발했던 것 같은데 그동안 활동을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시민 정치적 권리 없이 사회권 없다
조흥식: 저는 두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사회권운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기는 하였지만 그 제도적 전제가 결여된 상태라 실제적 효과는 별로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권운동이라고 하면 자유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자유권마저 유린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것이지요. 잘 알려진 마샬의 논리대로라면 자유권에서 좀더 발전해서 참정권을 문제삼고 더 발전하면 사회권을 문제삼게 되는데 우리는 서양에서 1백년동안 진행된 과정을 한꺼번에 압축적으로 진행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사회권이 인권문제의 중심이 된 감마저 있는데 자유권의 기본적인 것조차도 안되고 있는 마당에 마치 다 된 듯이 착각을 일으키는 운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가지를 함께 추구하되 사회권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권과 참정권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질적으로 확보될 수 없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우선 자유권과 참정권 중심으로 인권운동을 한번 제대로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권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도 확보되어야 하고,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한 특별법과 같은 것도 필요한 만큼 자유권이나 참정권과 같은 바탕을 튼튼히 확보할 필요가 있거든요. 다음으로 사회권분야 인권운동의 내용을 보면 특히 생활보호나 사회복지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종이 위의 명목적 권리에서 실체적 권리로 격상시키려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한 달에 10만원도 안되는 생활보호수당에 대해 위헌소송을 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권이 제대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군축을 통한 평화배당금을 확보하는 것, 민주적 산별노조가 건설되는 것, 나아가서 진보적 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자: 사회권을 실질적으로 추동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단결과 소외계층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제도틀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곧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확보문제와 맞물려 있다, 특히 노동3권의 보장과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보장이 전제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회권은 국제회의 아니라 세상없는 것을 동원해도 공염불이 되고 만다는 지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국제인권조약에 따라 제출된 정부보고서에 대한 각종 반박보고서 등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반박보고서에 이은 후속행동 필요
김형태: 반박보고서의 문제는 보고서를 내고 관련유엔기관에서 여러 차례 권고가 왔는데 제3자개입금지와 관련된 지난번 손종규 씨 사건의 경우 UN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했음에도 정부에서는 전혀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재심을 청구하고 있는 이장형 씨의 경우에도 유엔인권위원회로부터 자의적 구금이라는 지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접견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반박보고서 작성과정을 통해 인권단체들의 연대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국내인권상황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긴 했는데 정작 정부에서 전혀 딴소리를 하고 있을 때 마땅한 후속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한계라고 봅니다.
사회자: 지금 인권운동의 현황을 살펴보면 인권운동도 마치 김영삼 정권과 같이 국제화에 적극 동참해서 거기서 동력을 찾아보려고 한 측면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현황타파가 안된다는데 모두가 공감하는 듯합니다. 이 주제를 좀더 다뤘으면 좋겠습니다만 이번 좌담회 일정이 급박하게 잡히는 바람에 참석하신 분들이 일정조정을 못해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이 정도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권운동의 방향과 관련하여 각자 한말씀씩 자유롭게 해주시면 어떨까요.
김형태: 저는 인권운동의 범주를 어디까지 둬야할 지 아직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소위 재야나 운동권의 관점으로 인권운동을 규정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 인권운동의 현주소가 아닌가 봅니다. 구체적으로 인권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이고 어느 범위까지인지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는 거죠. 광의의 인권운동, 그러니까 재야전체를 인권운동이라고 보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하면 인권운동은 김영삼 정권에 들어와서 전체적인 재편이 이루어졌습니다. 인적 측면에서 국내운동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70, 80년대에 헌신적으로 투신했다가 사회전체가 최소한의 형식적인 자유주의를 갖추면서 국민들이 큰 호응을 해주지 않으니까 떠나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단체들의 알맹이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큰 단체들도 우려가 될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권운동이 전문화로 가지를 쳐서 발전하긴 했는데 아직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못하는 것과 단체간의 이기주의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단기적으로는 자기 단체에 손해가 나더라도 일을 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인권운동단체들이 단체이기주의를 버리는 것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국제인권운동만 해도 최근 들어서 방향정리가 되지 않으니까 모든 단체들이 너도나도 국제연대에 달려들어서 정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권운동이 국민 속으로 다가가야
조흥식: 인권운동의 범위는 보기 나름이겠지만 앞으로 노동인권은 노동운동 쪽에서 맡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회복지분야 중에서도 사회보험쪽은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노동운동이 맡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서비스는 그렇지 않지요. 각 부문이 제 자리를 잡으면서 인권운동은 점점 조직된 대변인이 없는 분야로 제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권운동이 위축되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문제가, 새로운 차별이 끊임없이 생길테니까요. 다음으로 국제연대나 국제인권기구의 활용에 대해서는 제한된 범위에서 효용을 인정하되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만큼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운동이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가 있는 곳에 찾아가 도움을 주는 열의가 필요합니다.
인권운동-사람과 정보가 필수
김형태: 저는 첫째 사람이 중요하고 다음에 정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 하나 하나가 전문가가 되어 구멍가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활동가들에게 충분한 대우를 함으로써 다른 분야로 흡수되는 우수한 인력을 끌어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보의 경우에는 단순한 양적 문제가 아니라 체계화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이 인권정보자료실을 운영하고 그 내용을 내실화 하는 성가신 작업을 꾸준히 벌여나가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시도라고 봅니다.
박래군: 예전과 달리 인권단체의 활동범위가 좁아지고 영역의 미묘함이 있는데 이런 와중에서 모두가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 인권교육입니다. 마침 올해부터 향후 10년은 유엔이 정한 인권교육기간인데 정부나 단체가 모두가 이를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권교육에 힘을 쏟을 때라고 봅니다.
인권운동의 생명력은 도덕성
사회자: 아쉬운 대로 마무리를 지어야겠습니다. 인권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권피해현장에서 출발하여 사법과정과 입법과정을 거치면서 의식과 제도의 개혁을 이뤄내는 총체적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인권운동의 생명력은 역시 도덕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권현장에서 인권피해자와 함께 있으면서 집요한 선의로 문제를 해결해 낼 때 비로소 도덕성에 기반한 대중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 각부문이 제자리를 잡으면 잡을수록 인권운동은 작은 운동이 될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인권운동이 인간성의 깊은 요청에 부응하는 이상 작더라도 반드시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고 인권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모든 여타 사회운동의 도덕적 기반이자 인권존중사회의 도덕적 토대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인권운동이 이러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권운동가 개개인의 정의에 대한 예리한 감수성과 불의에 대해 살아있는 분노, 그리고 다함 없는 선의가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이러한 도덕성의 바탕 위에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 이것이 인권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인권하루소식이 인권운동의 이러한 방향을 선도하는 기능을 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좋은 말씀 해주신 참석자들께 감사 드립니다.
(정리: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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