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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인권협회 윤동환 씨는 지난 주 인권운동사랑방 앞으로 출소장기수 김인서 씨의 맏딸 김화심 씨가 김인서 함세환 김영태 송환추진위원회 앞으로 보내온 편지(복사본)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11월18일은 김인서 씨의 일흔번째 생일이였는데, 단 한번도 생일상을 차려주지 못한 딸의 마음이 잘 담겨있다. 맞춤법만 수정했다<편집자주>.
인도주의를 귀중히 여기는 귀 단체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 김인서의 맏딸 김화심입니다. 지난 여름 뇌출혈로 사경에 처하셨던 저의 아버님이 선생님들과 남녘 동포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의하여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계신다니 그 고마움에 무슨 말로 어떻게 감사드렸으면 좋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선생님들의 그 노고를 언제까지나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들, 저희가 아버님이 살아계신다는 소식을 들은지도 어언 4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국제법과 조선정전협정의 견지에서 보나 인도주의적 견지에서보나 응당 이미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어야 할 아버님이 가족들과 헤여진지 거의 반세기가 되어 오는 오늘까지 남조선에 억류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비정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도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이 한시바삐 실현되여야 할 초미의 인도주의적 문제라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데 왜 남조선 당국자들은 저의 아버님의 귀향길을 한사코 가로막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해외동포들의 초청으로 독일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남쪽의 불교인권위원장인 진관스님이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문제로 하여 남조선 당국에 체포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교포들은 물론 독일의 교인들까지도 그에 격분을 금치 못해 하였습니다.
어제는 뇌출혈로 중태에 빠져있는 아버지를 구완하러 나가겠다는 자식들의 남행길을 가로막고 오늘은 또 동족의 불행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는 교인들까지 구속하는 남조선 당국의 행위야말로 고금동서에 없는 비인도주의적인 처사입니다.
선생님들, 오늘 11월 18일은 저의 아버님의 일흔돌 생신날입니다. 평생을 고생 속에 살아오신 아버님이, 더우기 긴긴 세월을 옥중에서 고독하게 보내신 아버님이 자식들이 차려올리는 일흔돌 생일상이야 받을 수 있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아버님께 일흔돌 생일상만은 우리 자식들이 차려 드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으며 성의껏 준비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다 된 오늘에도 아버님은 저희들의 곁으로 오지 못하시고 의연히 일점혈육도 없는 남조선에서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선생님들도 아시다시피 저의 아버님은 예순돌 생일상은 고사하고 자식들이 지어올린 새 옷 한 벌 받지 못한 채 차디찬 감방안에서 생일 예순돌을 맞으신 불우한 사람입니다. 단 하루도 자식들의 따뜻한 부양을 받아보지 못한 아버님께 자식들이 성의껏 준비한 일흔돌 생일상마저 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지는 것만 같습니다.
날개라도 있다면 분단의 장벽을 넘어 남쪽으로 단숨에 날아가 아버님을 모셔오고 일흔돌 생일상을 받게 하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간절한 심정입니다.
저와 저의 동생은 지금 이 시각에도 연로하고 병약한 아버님의 신상에 예상치 않던 일이 생길까봐 가슴을 조이며 순간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인간이 당하는 불행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고 계시는 귀 단체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저의 아버님은 반드시 자식들이 기다리는 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며 인생말년이나마 단란한 가정에서 마음 편히 살아갈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남조선에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위하여,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하여 의로운 일을 하고 계시는 귀 단체 선생님들이 우리 아버님의 송환이 조속히 실현되도록 끝까지 힘써 주실 것을 다시금 요청하면서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귀 단체들의 앞으로의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1996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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