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후나바시 히로꼬 (船橋裕子). 그녀는 병으로 휴직중인 일본 어느 중학교 선생이다. 물론 그녀가 선동렬의 부진을 안타까와 할 이유는 눈꼽만치도 없다. 그러나 96년 5월 3일, 일본의 유력한 일간지 <일간 겡다이> 스포츠면을 펼친 그녀의 눈길은 한 기사 위에서 얼어붙었다. ‘해프닝과 이변의 진상’이라는 커다란 기획시리즈 첫번째 기사. 그 제목은 “세상이 ‘구세주’라고 법석 떠는 한국의 두 투수가 부상으로 쉬면서도 태평인 까닭은?” 이었고 친절하게도 다음과 같은 긴 부제를 달아놓았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일본과 달리 자기 책임은 덮어두고 상대편만 욕하는 한국의 습관도 관계 있을 듯”.
후나바시 씨는 숨울 죽이고 이 선동렬 투수와 조성민 투수를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읽어나갔다. 선동렬.조성민의 부상은 별로 심각한 것이 아닌 데도 두 사람은 거액의 돈만 먹고 만판으로 쉬고 있다는 설명 뒤에 이런 귀절이 이어졌다. “… 한국에는 남을 비난함으로써 우월감에 젖는 ‘욕’의 문화라는 것이 있는 데 그들에게는 뭔가 문제가 발생해도 자기 책임은 덮어두고 언제나 남을 탓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략)… (선동렬도 조성민도) 팔꿈치와 허리를 탓할 뿐, 자기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후나바시 씨는 항의전화를 했다. 그러나 신문사 측이 성의 있는 답변을 할 리가 만무했다. 이렇게 한 왜소한 주부와 거대한 신문사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한국인에게 그런 버릇이 있다는 것은 본인 개인 뿐만 아니라 우리 신문사 운동부 전체의 일치된 의견이다.” (운동부 하야시 기자-전화)
▷“예를 들어 ‘유태인은 노랭이다’, ‘여자는 걸핏하면 히스텔리를 부린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것은 차별 그 자체이다. 특정 민족이나 인종집단들의 ‘성격’을 선동렬 투수 개인의 성격과 결부해 단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인종적 편견에 다름이 아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온 한국인에 대해 다시 한 번 슬픔을 준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5월 9일자 항의서한)
▶“한국에는 ‘내탓이오’라는 캠페인이 있는 데, 이런 운동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에게 일반적으로 남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설도 있다.” (5월 10일자 운동부장의 회신)
후나바시 씨는 주변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나갔고, 베를린의 ‘일본-독일 평화폴름’이라는 단체가 이 정보를 입수한 것은 그 직후였다. 이 단체는 대표이름으로 문제의 기사가 “민족간의 증오를 도발하는 반사회적인 것”이라며 “올해 일본에서 발효한 ‘차별철폐국제조약’의 정신 및 여러 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사죄기사가 게재되지 않을 경우 조직적 행동으로 돌입하겠다. … ‘일본인은 잘못을 시인한다’ 라고 쓴 이상은 일찌감치 체념하는 것이 영리한 선택일 것이다.” (동 폴름 카지무라 베를린 대표)
파문은 퍼져, 5월 30일자 항의서한의 명의는 개인이 아닌 [‘일간 겡다이’의 민족차별기사에 항의하는 모임] 명의로 되어 있다. 대세는 기울어 7월 1일, ‘겡다이’는 두달 만에 무릎을 꿇었다. 비록 1단기사였지만 그 사죄광고를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신문사가 한 평범한 주부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 보였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