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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대학교 교정에 있던 '송광영 열사 추모비'가 사라졌다. 22일 새벽 누군가에 의해 제거된 것이다. 23일까지도 추모비의 행방은 묘연하며, 소행인이 누군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추측만 무성한 상황이다.
현재 의심의 표적은 학교당국. 사건이 교내에서 발생한데다 중장비가 투입됐으며, 외부인이 추모비를 제거해 갈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무엇보다 목격자 진술에서 드러난 여러 정황들이 이러한 의심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 연세대 사태 이후 학생들에게 불리한 분위기, 소강상태에 빠진 학원민주화투쟁, 최근 총학생회 간부 4명 구속에 10명 수배상태라는 배경도 무관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목격자들의 진술은 당일 새벽 학교측이 의도적으로 추모비 주변에 사람의 접근을 차단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21일 밤 C동(추모비 앞의 건물)에 있던 학생들은 자정 전에 경비원에 의해 모두 쫓겨났다고 한다. 이날 따라 경비원이 ""경찰이 치고 들어올 것 같다""며 학생들에게 귀가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C동 경비원은 상관의 지시에 따라 D동건물로 이동, 그곳에서 야근을 했다. 이런 가운데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 추모비 철거 작업이 진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21일 근무했던 학교 정문 경비원들은 ""기중기가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며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진 모든 차량이 통제된다""고 말해 엇갈린 진술을 폈다.
'송광영 열사 추모위원회'와 학생회측은 추모비 제거 사건을 독재정권으로의 회귀와 학원탄압을 노리는 세력들에 의한 소행으로 단정짓고, 즉각적인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찰은 ""이번 사건은 카 크레인과 중장비를 동원한 계획적 범행""이라며, ""학교당국과 학교 관계자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학교측 관계자는 ""현재까진 아는 것이 없다. 차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송광영 씨는 85년 9월 전두환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분신, 그 해 10월 사망했다. 추모비 건립은 87년 경원대 학원민주화 투쟁과정에서의 합의사항에 따른 것으로 당시 학교측과 재학생, 동문, 유가족 등의 모금으로 2천여만원의 경비를 들여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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