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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 Don‘t Preach(아빠 설교는 이제 그만)”
앙큼한 노래였다. 80년대 중반 ‘까진’ 미국 10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마돈나의 노래 ‘Papa Don’t preach’는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신보수주의가 판치던 레이건 정부시절이었다. 2001년 오늘의 한국도 설교소리로 시끄럽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설교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역시 집단화된 부모인 기성세대와 종교인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의 아버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정통윤)는 침을 튀기며 설교한다. “동성애 사이트 따위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그 옆의 목사님들도 목청을 높인다. “야한 노래는 절대 듣지 마라.”
최근 한국 사회는 ‘윤리’를 둘러싼 싸움이 한창이다. 정통윤 등 민간심의기구의 성격이 여전히 의문시되긴 하지만, 국가검열이 형식적으로나마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지금, 시민사회의 대표를 자임하는 윤리의 경찰들이 나타났다. 학부모와 기독교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통윤의 전문위원인 교수와 학부모단체 대표는 청소년 금지목록을 작성하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긴밀한 ‘학부모감시단’은 금지목록을 감시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는 가수 박진영의 야한 노래들을 고발한다. 한편에선 정보통신검열반대공동행동이나 문화개혁시민연대 같은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청소년 보호’를 볼모로 벌어지는 윤리의 전쟁터에 당사자인 청소년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윤리의 금을 긋기에 따라서, 동성애 금기의 영역으로 밀려날 수 있다. 섹스가 놀이란 발상은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금을 누가 긋느냐다. 과연 부모의 권리와 하나님의 윤리는 과연 그 모든 권한을 가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가?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의문점이다.
윤리를 둘러싼 싸움은 시민사회의 지형을 새롭게 그리기도 한다. 전교조 교사 해직이라는 국가권력의 폭력에 맞섰던 참교육 학부모회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권리 확장을 위해 싸워온 여성민우회는 일산러브호텔 감시운동에서 결혼제도 바깥의 성을 감시하는 시민경찰로 나서기도 했다. 이 새로운 변화의 옳고 그름을 제쳐두더라도, 우리가 직면한 윤리를 둘러싼 싸움의 복잡한 지형도를 가늠케 하는 사례들이다.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어도,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시민의 자율윤리는 결코 ‘우기는’ 방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강요된 윤리는 나이주의 위계 속의 소수자인 청소년, 이성애 중심사회의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의 인권침해로 이어진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그 나쁜 표본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모와 종교계,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청소년까지 머리를 맞대고 ‘까놓고’ 토론할 수 있을 때, 폭력적이지 않은 윤리의 잣대는 도출된다. 허상이 난무하는 싸움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지금 중얼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교 그만하세요.”
(신윤동욱 씨는 한겨레 21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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