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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3자개입금지조항은 신군부의 5.18 내란을 완성하는 도구로 설치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내란집단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든 조항으로써 세계에도 그 유례가 없는 독소조항이다. 이러한 독소조항으로 한 나라 노동운동의 최고지도자를 구속한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또 민주노총의 설립신고서를 하루만에 반려한 정부의 처사는 노조의 현황파악을 위한 행정서비스 차원에서 마련된 설립신고제도를 실질적인 노조설립허가제도로 운용해 온 정부의 잘못된 관행을 하루 바삐 바로잡아야 한다. 복수노조금지제도는 5.16 군사쿠테타의 산물로써 군사정권에 협력하는 기존 노조에 그 대가로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신설한 조항으로 법원칙에 비추어 볼 때 부당한 것은 물론, 이미 1천여개 노조, 40만명에 달하는 다수 노동자들이 탈퇴하였고 또 가입하기를 명백히 거부하고 있는 한국노총에 노동조합들을 강제적으로 예속시키는 외에 어떠한 합목적적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노동.인권단체들은 제3자개입금지 조항을 폐지할 것, 복수노조를 허용할 것, 교사와 공무원이 노조를 결성.가입할 권리를 인정할 것, 직권중재는 파업시 주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필수 서비스에 국한할 것 등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의 노동법 전반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사회권조약)에 위반된다면서 특히 교사와 공무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파업권에 대한 제한을 즉각 철폐하라고 요구하였다. 또 7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91년 이른바 대기업연대회의 사건에서 제3자개입금지법으로 관련자를 처벌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자유권조약)에 위반했다고 판정하면서 이 조항을 개정하고 다시는 이러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하라고 까지 하였다. 앞에서 열거한 국제법들은 모두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거쳐 비준한 국제조약으로써 엄연히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 조약들에 위반하는 국내법은 신법우선의 원칙에 따라 이미 그 효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법학교수들은 정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민주노총의 권영길 위원장을 즉시 조건없이 석방해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적용된 혐의가 원천적으로 부당하다고 판단하며, 만일 정부가 굳이 그를 수사할 필요가 있다면 최소한 그를 석방하여 불구속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
둘째, 정부는 지금이라도 민주노총의 설립신고서를 수리하여 신고증을 교부하고 민주노총을 대화의 상대로 삼아야 한다. 이 나라의 40만이상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조직을 정부가 적대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 부당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긴장요인이 될 뿐이다. 한편 실제 민주노총의 조직대상은 한국노총에서 탈퇴한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들에 국한된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민주노총의 합법성을 부인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세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 헌장, 사회권조약, 자유권조약 등 우리나라가 비준하여 이미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이들 국제법이 정한 기준에 맞도록 노동법을 개정하는 일에 즉시 나서야 한다. 제3자개입금지 규정 폐지, 복수노조금지 조항 폐지, 교사와 공무원의 단결권 보장, 직권중재 제도의 폐지,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 등이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내용들이다. 그 밖에도 지난해 정기 국회에서 통과된 조폐공사법 개정법률에 대하여 원상회복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과거청산을 통해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와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도 군사독재정권이 갖가지 비상입법으로 도입한 제반 악법들을 개폐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특히 자주적 노동운동을 적대시하는 제반 법률들은 정경유착을 조장하고 오히려 근로자들에게 국가와 사용자에 대한 불신과 증오마저 불러 일으키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더욱 깊게 하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반민주적 법률들을 개폐하는 것은 노사대립과 갈등을 치유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 내는 출발점일 뿐 아니라, 헌법과 국제법에 따른 정부의 기본적 의무이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와 국민의 위신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199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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