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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조 ① 여자시설에는 산전 및 산후의 모든 간호 및 처치를 위하여 필요한 특별한 설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가능한 경우에는 항상 시설 밖의 병원에서 분만할 수 있도록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 아이가 시설 내에서 태어난 경우 이 사실을 출생증명서에 기재해서는 안된다.
② 유아가 모친과 함께 시설 내에 있도록 허용되는 경우 자격 있는 직원이 근무하는 유아실을 설치하여 모친이 보살필 수 없는 경우 유아를 보호하여야 한다.
-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에서
위에 적은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은 지난 55년 열린 제1회 유엔 범죄방지 및 범죄자처우회의에서 채택된 것이다. 이 규칙은 지난 40년 동안 “일반적으로 재소자에 대한 처우와 행형시설의 운영에서 올바른 원칙과 관행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국제적인 최소기준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 규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산전산후 시설 전무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 재소자의 처우문제는 이에도 훨씬 못 미친다. 교도소 내에 산전 및 산후의 간호와 처치를 위한 시설이 별도로 마련된 곳은 하나도 없다. 유아시설을 갖춘 곳은 더욱 없다.
모성을 보호하려는 배려가 있었다면, 고애순 씨의 경우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통 산모가 아이를 출산할 경우에는 병원에서 출산을 하고 한 달에서 두달 정도 산후조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야 하며 이럴 경우 교도소에서는 산모들끼리 한방에 모여 살게 하는 정도의 배려를 해준다. 임산부나 출산모에 한해 방안에 난로를 놓아주는 것 정도가 교도소 배려의 모든 것이다. 고애순 씨의 경우 광주교도소 내에서 검진을 했다는 것은 초음파 검사로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의 검진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체중과 키를 재는 정도의 신체검사 일 뿐이다. 행형법 시행령에 조산부를 둘 수 있다고는 하나,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일반 재소자들을 진료할 전문의마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소수인 임산부를 위한 조치를 할 리가 없다. 고씨의 경우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기 이틀 전 단 한 차례 외부 병원의 검진을 받았을 뿐이다.
축농증에 감기약
영등포구치소에서 지난 93년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6개월간 수감되었던 김은주(28)씨는 “6개월 동안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재소자가 아프다고 하면 담당교도관이 신청을 받아 의무과에서 약을 타다 준다. 병동에 입원하는 경우는 아주 죽을 정도가 아니면 어림없는 경우”라고 말했다. 이것은 어느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39개 전국 교도소.구치소.소년원에 배치된 의사는 55명으로 1개 교도소에 1.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는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서울구치소의 경우 95년 8월31일 현재 3천8백45명의 재소자가 수감되어 있었는데, 의사는 4명이었다. 광주교도소의 경우 재소자가 2천2백43명이었던 비해 의사는 고작 2명이었다. 의사들은 교도소에서 위탁받아 의무과장 등의 직함을 갖고 진료를 전담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외부에서 개업해 있거나 다른 병원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1주일에 한 번 정도 교도소에 들러 환자들을 볼 뿐이다.
약사는 전국 교도소에 단지 3명 뿐이다. 이런 형편이니 ‘축농증에 감기약’을 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 예산 부족으로 중환자들은 교도소에서 손댈 수 조차 없다. 지난해 광주교도소(소장 민경화, 54)에서는 진료를 받지 못해 2명의 재소자가 죽어 나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며 정부 통계로도 한해 평균 20-30명이 죽어 나간다.
통제 위주 행형 벗어나야
교도소등의 의료문제에 대해 박찬운 변호사는 “재소자를 구금하는 것이 모든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해 최소한의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구금의 목적이다”고 지적했다. 박변호사는 “행형법에 임산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해도 교도소장이 이를 판단, 정기검진을 시행해 빨리 석방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말해 이 사건에 교도소측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 우리나라 행형수준에서는 일반 재소자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시설이나 인력, 예산확보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재소자를 일방적으로 통제하려는 교도행정의 관점에서 벗어나 재소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충과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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