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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이 아직도 무게 있게 마음에 다가오는 시대를 우리는 참으로 어이없게 살아가고 있다. 정신보건법, 전자주민카드법안,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국가안전기획부법과 같은 법들이 시퍼렇게 살아 국민의 자유와 사상을 위협하고 있다. 악법은 이른바 지배층과 기득권층의 논리와 입장에 영합하는 법이다. 상식과 순리로는 이해될 수 없는 법이다. 말이 법이지 법의 탈을 쓴 폭력도구인 셈이다. 악법이 존재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형식논리가 판을 치는 사회이다. 악법은 집권자 입장에서는 비판세력과 적대세력을 제압하는 아주 마음에 드는 채찍인 셈이다.
악법…법의 탈을 쓴 폭력
이러한 악법이 중세의 마녀사냥, 미국의 메카시선풍, 우리의 빨갱이 사냥과 만날 때 그 위력은 메가톤급이다. 인간이라는 동물만큼 잔악한 동물은 없다는 것을 이른바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 사회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법은 몇몇의 편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자유와 사상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법이어야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현실이 보여주는 것은 힘의 논리이다. 그 힘을 권력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권력의 무상함을 역사는 반복하여 보여준다.
그럼에도 정상배들은 불나비처럼 권력을 쫓고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물을 심겠다고 했다는 스피노자는 보이지 않고 내일 감옥에 가더라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전두환 노태우 같은 독재자성향의 인간쓰레기들만 보인다. 이들에게 나라의 심부름역을 맡겨야 한다니 암담하다. 분단을 즐기는 자들에 의해 우리는 철저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북은 북대로 물질적인 것부터 무너져 내리고, 남은 남대로 정신적인 것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남 북은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확실한 대답을 할 자가 없다. 자유와 정의가 없다. 평등과 화해가 없다. 남북의 집권층은 저주받아야 할 만큼 많은 죄를 역사와 민족앞에 저질러 놓았다. 북쪽 당국은 미국 일본은 좋으나 남쪽은 싫단다. 남쪽당국은 중국 러시아는 좋으나 북쪽은 실단다. 타민족 타국가에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주변 4강에 놀아나는 것도 정도가 있지 해도 너무한다.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일반국민들이 할 일은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다.
전봉준의 가능성을 되새겨보며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언제까지 하늘만 쳐다보고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그렇지만은 않았다.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인간평등을 부르짖던 만적에서부터 백성들에 대한 탐관오리들의 무자비한 착취에 분연히 일어서 악법(각종 세금을 규정한 세법)을 철폐하고 새 세상을 이루려 했던 전봉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굽이굽이에는 살맛 나는 인권세상의 흔적이 크게 남아있다. 물론 실패한 결과를 지나치게 과정의 위대함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그 역사에서 가능성을 읽을 수는 있다. 나아가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그러한 역사의 흔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악법은 인권침해와 동적의 양면 같은 형국으로 이해할 때 악법철폐운동은 인권운동의 첫 단계이다. 이른바 민주정부로 출범한 민주당 장면 정권시절 반공법, 데모방지법 등 2대 악법반대투쟁이 있었던 흔적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 이후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학원 안정법 파동은 독재자들의 공통된 성향을 가늠케한다. 김영삼 정보도 예외는 아니다.
날치기 악법은 여전히 남아 있고
96년 12월말에 날치기 처리한 2대 악법(노동관계법, 안기부법)은 올 봄 노동관계법 재개정에도 불구하고 그 앙금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분위기에 휩쓸려 국민들의 관심이 희석되고 있다.
정치관계법(선거법 포함)이 여당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면 이 또한 악법의 범주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먼저 달려 1등을 한다거나 혼자 뛰어 우승을 하는 것은 분명 악법에 편승하는 것이다. 여당 프리미엄 때문에 한번도 정권 교체를 평화적으로 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에겐 평화적 정권교체가 최우선 과제이다.
이 과제를 풀지 않고는 민주주의라는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악법들이 대부분 정치, 사상분야인 점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초도 없이 독재에 허울만 씌운 모습으로 반세기를 훌쩍 넘겨버린 불행한 이면에는 분단 이데올로기와 맹목적 충성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 아직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20세기 말의 우리나라는 변해야 산다. 도덕성이 결여된 정권은 민주정치를 할 수가 없다. 악법을 집권의 도구로 삼아 순간적 부귀영화에 빠져 허우적대는 무리들이 집권을 계속하는 한 인권침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더 하자면 남녀평등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인권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오는 법이라면 악법일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 그런 법은 대부분 밀실에서 법안이 마련되고 공청회도 생략한 채 날치기 처리되기가 쉽다. 그렇게 잘못 태어난 법은 우리를 절망케 한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악법을 청소하고 평등세상을 기약하여야 한다.
김동한 (법과 인권연구소장, 광주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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