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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인 아기였을 때 나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 말고는 딸들에게 절대로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서 많은 것들 중에서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골라 잡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준다. 이런 소박한 꿈이었다.
“보슬아.
‘눈높이’도 ‘구몬’도 ‘속셈학원’도 없는 외국에서
잠시 손바닥 만한 아늑한 학교를 다니다 온 죄로,
애국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 나붓기는 커다란 학교
2학년 교실에 처음 나가던 날부터 너는
생존경쟁의 쓰디쓴 맛을 보아야 하는구나.
수영장 물 속에 있을 때, 철봉대에 매달리고 있을 때,
자전거를 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너는 말하지만,
지금은 구구단을 외어야 한단다. 숙제니까.
오늘은 책을 읽어야 한단다. 숙제니까!
“아빠, 그래도 난 공부하기 싫단 말이야.”
“못하면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창피 당하는 데?”
“그러면 학교 안가버리지 뭐…”
“!!!”
학교폭력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평소 ‘인성교육’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저속한 상업주의와 경쟁의식을 부추기는 데 여념이 없던 언론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갑자기 우려를 표명하면서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해댄다. 입시 중심의 교육 속에 인간교육이 실종해버린 한국 교육의 업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서 옳다. 그러나 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을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서 깔아뭉개는 이 사회에서 아무런 의지도 없이 골백번도 되풀이 되는 ‘인성교육’ 주장이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제도로서의 교육은 서양의 산업혁명으로 비롯된다. 그것은 기계공업에 의한 대량생산 아래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균질의 상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을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원래 학교교육의 첫째 목적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으며, 어린이 한사람 한사람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 성장 발달을 돕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박정희 시대 비약적으로 ‘발전’한 학교교육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개발을 ‘성공’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인성’은 없고 ‘경제’만을 아는 대량의 국민을 필요로 하는 개발독재 정책이 학교라는 제도를 통하여 그러한 교과과정을 아이들에게 강요했기 때문인 것이다. 아이들의 개성과 프라이버시는 무시되고 의사 표명의 자유와 결사 집회의 자유는 가혹하게 억눌렸다. 인권이 무시되는 곳에서 어떤 ‘인성’이 자랄 수 있단 말인가? 박정희의 독재개발을 온갖 수사로 찬양해대는 입으로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개가 웃을 일이다.
학교폭력의 뿌리는 박정희식 약육강식 교육에 있다. 약육강식의 경쟁교육에서 탈락하는 아이들은 표현에는 서툴러도 결국 자기의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면 학교 안가버리지 뭐”. 그것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자기도 세상을 버리겠다는 슬픔에 다름이 아니다. 아이들의 이 엄청난 슬픔을 묵살하는 군사정권은 손쉽게 힘으로 아이들의 자기 표현을 누르지만 눌리면서 아이들의 사회는 병들어간다. 폭력화하면서 음성적으로, 처음에는 고등학생, 그리고 중학생, 중학생에서 다시 초등학생으로…. 아이들이 어른 세계에서 폭력을 배운다. 이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실에 일면 밖에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에서 도태된 아이들이 자라서 도태된 어른이 되는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유엔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 위원회는 작년 한국 정부에 대하여 “교육정책을 재검토할 것을 권장”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그리워하고 박정희의 꿈을 쫓고 있는 이상 우리는 절대로 교육정책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보슬아.
‘스페인’이라는 나라, ‘오렌세’라는 도시 교외에는
‘본페스타’라는 작은 나라가 있는 데,
100명의 아이들과 40명의 어른이 그 국민이란다.
대통령과 모든 장관은 선거로 뽑히고, 중요한 문제는
어린이도 포함한 국민 모두가 함께 토론한다.
“가난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이 짓눌려 움쩍도 못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그러기 위하여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내고 싶다.“
이것이 이 나라 국민들의 희망이란다.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에 다니고
어른들의 필요에서가 아닌, 어린이를 위한 공부를 한단다.
낮에는 노동을 하거나 서커스 연습을 하는 데,
노동의 댓가로 받는 돈으로 아이들은
먹고 입고 공부한단다.
모든 국민은 서커스 단원이고, 아이들은
하루 빨리 서커스에 나가고 싶어 열심히 연습을 한단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서커스를 보여주면서
‘사는 일의 기쁨과 사랑’을 말해주기 위하여.
공부를 못해도 학교에서 창피 당하지 않고
친구가 친구를 때리지도 않는다.
경찰 아저씨가 잡으로 오지 않으며,
대통령이 무서운 얼굴로 “엄단”을 말하지 않는다.
보슬아.
이런 나라를 언젠가 이곳에도 만들고
너를 이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다.
이것이 아빠의 꿈이란다.
간절한 꿈이란다.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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