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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쥐시포푸 키에슬로프스키
주연: 말로스라프 바카, 크쥐시포푸 글로비즈
죽음의 도시 바르샤바. 잿빛 도시엔 불안한 기운이 어둠처럼 깔려있고 운명적인 선율은 이 도시 사람들의 머리 위를 배회한다. 모든 사람들은 철저하게 혼자다. 그들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언제 어디에선가 한 번은 만났던 흐릿한 인연의 끈만이 오로지 그들을 이어줄 뿐이다. 그래서 그 흐릿한 인연의 끈을 붙잡고 서로의 어깨를 기댈 사람을 찾지만 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과 같은 단절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 누구도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없다. 단지 비루먹은 개만이 그들의 위안이 될 뿐이다.
이것은 단지 바르샤바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 모두가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있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서로를 가로막고 자신이 철저하게 외로운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깨지기 쉽고 불안한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지만 누구도 이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굴레에 돌을 던져라! 이 굴레를 깨버려야 한다! 그러나, 조심하라. 이 돌은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떠돌이 청년 야체크는 자신이 던진 돌에 맞는다. 이것이 인생의 진실이다. 돌을 던지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그 돌에 맞을 것이다. 누가 우리를 이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다음 세대에서 그 희망을 찾는다. 유리 너머에서 환하게 웃는 소녀들의 웃음 속에서, 변호사 피토르의 갓난아기에게서.
살인을 매개로 돌아본 삶의 진실
키에슬로프스키는 TV시리즈인 10부작 <십계> 중 5부 ‘살인하지 말라’를 극장용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으로 만들고 난 후 TV판보다 낫다고 자평하였다.
이 영화에선 두 가지의 살인이 존재한다. 이유 없이 택시 운전사를 죽이는 야체크의 살인과 국가라는 이름하에 야체크를 죽이는 제도의 살인이다. 두 가지 살인에 저항하는 인간의 유일한 방법은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애원 한 마디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연민 때문에 부조리한 세상에 유일하게 내뱉을 수 있는 단 한 마디이다.
야체크의 살인은 끔찍하고도 비인간적이다. 그런 살인자가 사람들 틈 속에서 온당하게 살게할 수 없다는 것이 사형제도의 취지이다. 그렇다면 사형제도는 온당한 제도인가? 키에슬로프스키는 아니라고 머리를 젓는다. 두 개의 살인을 평행하게 비교해 보여주면서 그것이 같은 것임을 이야기한다. 제도적 살인도 역시 살인인 것이다. 천부 인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형제도 역시 온당치 못하다.
거장들의 영화엔 내러티브 너머로 언제나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다.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은 살인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면서 삶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가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다. 화면 곳곳에서 그 단서를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다른 재미일 것이다.
【송덕호-민주언론운동협의회 영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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