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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계엄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가 지난 3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신종권(44 부산 내성중 교사) 씨는 “오랜 짐을 벗은 것 같아 기쁘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신 교사는 영남상업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80년 5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민주인사들이 구속되기 시작하자, 5월 21일 대학시절의 동료들과 ‘정치일정 단축과 계엄령 해제’를 위한 유인물 작성 배포를 논의했다가 발각돼 계엄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심을 청구하게 된 까닭은
당하는 사람은 계속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로 살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광주항쟁을 광주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벽을 깨고 싶었다. 학교 선생으로서 아이들에게 사회의식과 정의감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재심 청구에 어려움은 없었나
작년 1월초 서울고등법원에 재판을 청구하러 갔지만 자기소관이 아니라며 접수를 거부했고, 부산으로 내려가니 또 서로 소관을 미뤘다.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쉽게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절차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구속된 뒤 겪은 피해라면
보안대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동안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학교측은 아내를 통해 사직서를 강제로 제출받았다. 이후 취업이 잘 안돼 술장사, 시험지장사 등을 해보다가 학원강사 생활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민주화운동 관련 복역자들이 그러하듯 일상생활에서도 지장을 받았다.
-어떻게 복직하게 되었나
93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복직조치가 내려지게 되면서, 복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측에서 “스스로 사직서를 내지 않았냐”며 거부해서 1년이 넘게 힘든 노력을 기울였다. 청와대를 비롯해 교육부, 정당 등을 찾아다녔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확인을 받아오라”는 교육청의 요구 때문에 광주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확인’을 받아오기도 했지만, 당국은 또 전교조 활동을 시비 걸고 나섰다. 10여 년간의 호봉을 인정하지 않는 특별채용이라는 형식의 굴욕적인 조건이었지만, 주변의 권유로 일단 복직부터 하게 되었다.
-5 18 또는 5 6공 인권피해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국민위원회를 설치해서 과거의 죄를 모두 드러내고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구속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연행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에 의해 고통받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구제조치는 없다.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내 나라가 좋은 나라다’는 생각을 갖도록 할 수 있다면, 그 비용은 결코 아까운 것이 아니다. 피해자 스스로도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정치권의 전 노 사면논의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가
과거의 일을 그렇게 쉽게 잊을 수가 있는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도 안된 상황에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상황에서 전 노 씨가 사면된다면 법이나 사회정의 양심은 다 소용없는 것이다.
신 교사는 “아직도 음지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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