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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이 이제 50세이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젊음을 다 바쳐 일했던 방송사에서 파견법에 의해 해고되고 나서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투쟁의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뿐인 삶이었다. 열심히 투쟁했건만, 조합원들인 동료와 후배가 파견법에 의해 2년마다 무기력하게 해고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조합원들을 만나러 KBS에 들어가는 것도 저지당한 채 매맞고 부러져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어야했던 고통, 그 자리에 절규하며 그가 있다. 마치 돈키호테처럼 두드려도 꿈쩍 않는 천하의 악법 파견법을 없애기 위해 그는 혼자라도 돌진한다.
또 한 동지가 있다. 직업훈련원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단지 빽이 없어서 바로 그 회사의 사내하청으로 들어간 노동자다. 오로지 노조 만들어서 투쟁하겠다는 결심으로 엄청난 차별과 멸시를 견뎌왔던 동지다. 꿈에 그리던 노조를 만들었지만 SK의 탄압으로 모두 집단 탈퇴하자, 단 세 명의 동지들과 함께 투쟁을 이끌어왔다. 동지들끼리도 가끔은 잘 안 맞고, 흔들리기도 많이 흔들렸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투쟁 과정에서 쓰러져 수술도 받았다. 그러나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면서 2년 6개월을 넘어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3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정규직으로 복직시키라는 판결을 받아내고서 이제 끝까지 비정규직 운동의 씨앗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또 있다. 517일이 넘는 투쟁 중에 동료를 죽음의 길로 떠나보내고, 한겨울 노숙농성 중 추위 때문에 쓰러져 언어장애가 된 동지를 부둥켜안고, 집안이 파탄 나 괴로워하는 동지들의 가슴 쓰린 사연을 가슴에 묻고 또 시작하려는 동지가 있다. 실망도 많이 하고, 때려 치울까도 몇 번 생각했다. 그러나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그래도 우리가 살길은 다시 노동조합을 만들고 새롭게 투쟁하는 길밖에 없지 않냐며 그 길을 다시 가려 한다. 분통이 터질 만큼 무시당하면서 살았고, 그 분을 삭이다 도저히 참지 못하게 되었을 때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그 투쟁도 분통터지는 과정이고, 삶을 파탄나게 하고,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것을 '고통'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 외에도 정말 많다. 투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던 한진면세점 동지들, 아직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교사 동지들, 결코 젊지 않은 나이지만 젊은이들보다도 더 치열하게 삶을 열어가는 건설운송 동지들, 하나하나 거명하기에도 벅찰 만큼 많은 동지들. 매번 분노에 타오르면서도 동지들에게 넉넉할 줄 알았던 많은 동지들, 동지들…
그런데 무엇이 이 동지들을 전선에 서도록 만들었나? 이 동지들이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결코 그렇지 않다. 어떤 때는 비열하고, 어떤 때는 단순하고, 어떤 때는 흔들리고, 어떤 때는 과격하고, 어떤 때는 너무 타협적인, 평범한 노동자 그 자체이다. 그런데도 무엇이 이 노동자들을 고통 속에서 일으켜 세우는가? '희망'이 있기 때문인가? 아니다. 난 '희망'이 이 동지들을 세우는 동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을 많이 거쳐왔다. 그렇다면 뭔가? 그것은 인간다움을 향한 열망이다. 설령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지라도, 시지프스처럼 개인의 의지와 투쟁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다 할지라도 그에 굴복하지 않는 것, 길들여지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정신,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난 이 동지들 앞에서 굉장히 작아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때로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 커서 짓눌리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무지하게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 동지들과 함께 인간다움의 길을 택한 이상, 고통을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낙관을 갖고 있지만, 때로는 이 길이 패배를 향하는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령 이 길이 패배하는 길일지라도 가겠다. 나의 '동지'들이 그렇게 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진 씨는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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