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 북한보도와 국보법-정일용(<연합통신> 기자)
북한 보도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
북한에 대한 보도는 앞뒤 맞지 않는 보도, 미확인 보도, 출처를 밝히지 않는 소식통 인용보도, 작문성 보도 등 엄밀히 말해 기사요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갖가지 기사들이 거의 매일처럼 등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북한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것처럼’ 써야 하는데서 무리한 기사들이 생산되고 이것이 독자들을 혼란 속으로 빠뜨리는 것이다.
언론사들도 북한 관련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그러나 폐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북한이라는 말만 나오면 신경을 한번 더 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국보법, 북한에 대한 언론 내부의 고질적 편견 등 내부 요인이 겹쳐 언론사의 대북 정보 획득능력,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는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언론이 다루는 북한의 정보는 내외통신, 국내 정보기구, 외신보도, 재외교포 등으로부터 획득되는데, 간접 취재이기 때문에 이미 그 안에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
북한 핵문제, 김주석 사망, 김정일 권력승계 이상설 등은 우리나라 언론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객관과 주관, 공정과 편견이 종종 뒤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보법이 강요하는 대북 적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한 북한 보도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국보법 체제와 노동운동- 허명구(월간 <사람과 일터> 주간)
국보법은 법 이전에 하나의 체제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이다.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할 수 있는 사상과 활동을 정치군사적 대립구조로 연결시켜 극도로 억압했기 때문이다.
전쟁과 분단의 체제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 적개심과 비이성과 맹목의 정념이 여과 없이 법의 얼굴로 표현된 것이 국보법이다. 그것은 남한에서 ‘잡초’를 뽑아내어 북한에 대해 남한을 순백(純白)의 반대물로 만들고자 한 ‘배제(排除)’의 장치였다. 그런 점에서 비틀어진 분단한국의 특수체제를 표현하는 말로 국보법 체제만큼 적절한 것이 달리 없을 것이다.
국보법이 노동운동 굴복시켜
이것은 사회구조의 모순 위에서 성장하는 노동운동에 중요한 장애를 조성하였다. 왜냐하면 국보법적인 논리는 남한의 노동운동에서 특정인물, 특정조직과 특정노선을 철저히 배제하여 노동운동을 철저한 관제 반공 어용의 조직을 만드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60~80년대 노동조합원 중에서 국보법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국보법이 노동운동과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보법이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굴복시켜 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48년 12월 국보법의 제정으로 노동조합평의회는 말살되었고, 58년 국보법 대폭적으로 강화된 뒤 노동운동 내부에서 대한노총에 도전하여 59년 전노협이라는 새로운 노동조합단체가 등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5.1절도 단지 공산주의자들이 축하하는 날이라는 이유로 폐지되었다.
60년 4.19로 국보법이 다소 완화되었을 때 대한노총은 해산되고, 한국노련이 결성되고, 교원노조 등 새로운 노동조합들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한국노련은 해체되고 한국노총과 산별노조가 만들어졌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YH 노동자들의 농성으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
80년 봄, 한국노총이 흔들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세력이 힘을 얻어갈 때 5.17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이후 국보법은 반공법을 흡수, 대폭 강화되었다. 이 개정 국보법은 특별히 제17조에 국보법위반혐의자는 노동쟁의 중이라도 체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6월항쟁 이후 국보법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국제적으로도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국보법체제의 정당화 논리도 약화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적인 사회적 힘은 무엇보다도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노동운동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국보법은 역설적으로 노동운동과 같은 실체적 힘을 갖는 운동을 단속하는 것이다.
국보법의 극복에 있어 핵심중 하나는 국보법의 최대 희생자인 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 조직에 있어서의 자유, 노동운동을 옥죄어 온 국보법 체제적 노동관계법령의 폐지, 노동운동에 대한 국보법적 피해의식을 넘어서는 일일 것이다.
□ 서양의 마녀재판과 한국의 국보법 현상-박원순(변호사)
중세 서양인들이 마녀의 실체를 믿고 이들을 화형에 의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함으로써 공동체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었듯이, 이땅에서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빨갱이’의 존재와 이들의 사회에 대한 위험성을 믿고 이들이 국보법 때문에 처단되는 것을 지지하거나 방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러한 신념과 태도 때문에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빨갱이’로 몰려 ‘마녀재판’의 희생양이 되었다.
마녀재판과 국보법 재판의 대상은 주로 가장 약한 계층
국보법과 마녀재판의 유사성
① ‘중죄’의식과 공정절차의 실종-국보법이든 마녀사건이든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전복하는 중죄라는 생각은 바로 대량의 희생자와 극단적인 피해를 초래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정당한 재판절차마저 유린하는 근거와 배경이 되었다.
② 고문의 상용-마녀라고 자백한 경우는 많지만, 그 자백은 고문에 의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피해자에게도 늘상 고문이 가해졌다. 그 고문은 자백을 낳고 자백은 무고한 가족과 동료의 연쇄적 구속을 가져왔다. 이른바 불고지죄까지 쳐서 한 간첩사건은 수명에서 수십명의 구속을 불렀다.
③ 수사관의 협박과 법정의 진실-수사관은 고문으로 마녀 또는 간첩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보법 관련자의 경우 안기부 수사관이 검사실에까지 쫓아와 협박한다.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포기해야 한다.
④ 이단 심문소와 정보부 또는 안기부-마녀재판을 담당한 이단심문소에서 적법절차나 피의자 권리가 존중되기를 바랄 수 없는 것처럼, 국보법을 다룰 수 있는 실질적인 상위기관인 안기부 통제 아래 사법부가 놓이게 되었다.
⑤ 연약한 계층의 피해자-마녀재판의 대상은 주로 어린 소녀나 중노년의 여성이었다. 국보법 피해자 역시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계층 출신이 많았다.
국보법은 현재진행형의 비극
⑥ 중형의 선고-마녀와 국보법 위반은 다 함께 체제유지에 위해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중죄로 간주되었고 중형으로 다스려졌다. 국보법 사건의 사형선고 인원과 반공법 사건의 사형선고 인원이 60년부터 87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선고된 전체 사형선고 인원의 17.1%, 5.6%를 각각 차지함으로써 그 비중이 절대로 높음을 알 수 있다. 사형이 아니더라도 무기, 징역 10년 이상의 장기형이 쉽게 선고되었다.
광기와 광란의 시대는 그로 인한 희생자를 낳게 마련이다. 집단적 히스테리에 빠진 사회와 국가가 그 구성원을 해칠 수 밖에 없다. 바로 서양의 마녀재판과 우리의 국보법 소동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서양의 마녀재판이 오랜 과거의 일임에 비하여 국보법 재판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바로 우리의 비극이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서양에서는 마녀재판을 통해 선진적인 사법제도를 이룰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야만적인 주술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 냉전, 국가보안법, 사회복지 -김연명(상지대 사회복지학과)
한반도에서의 냉전체제는 남한의 국보법을 잉태했고, 국보법은 냉전체제를 강화 지탱하는 도구 작용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이 남한에서 사회복지의 저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남북한에게 군비경쟁을 유발시킴으로써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국방비 부담을 수십 년간 지속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과도한 국방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사회복지비에 투여될 수 있는 재정을 극도로 제약해왔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생성된 경제잉여의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군사비로 투여되어야 했으며, 이것이 사회복지 등 인간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국가예산을 만성적으로 제약하는 핵심적 원인으로 수십 년간 작용해 왔다.
의료보험 도입마저 불온시 당해
둘째,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냉전체제는 남한에서 사회복지가 성장할 수 있는 이념적 토대를 제거하는 기능을 해왔다. 예를 들어 70년대까지만 해도 의료보험을 도입하자는 주장조차도 매우 ‘불온시’ 당한 것이 현실이다.
셋째, 냉전체제는 남한에서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적인 사회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박탈해 버림으로써 서구에서 나타나는 사회복지 확대의 중요한 경로, ‘즉 노동운동의 활성화-->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사회복지의 확대’라는 경로를 40년 가까이 차단시켜 옴으로써 사회복지의 발전을 저해해 왔다.
국보법 문제의 해결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 냉전체제의 강고한 벽을 결정적으로 허무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냉전의 해체는 방위비 감축의 실제화, 사회복지 이데올로기의 확산 등을 통해 사회복지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형성시켜 줄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좀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제반 사회적, 물질적 조건을 형성시켜 줄 가능성을 상당부분 담보해줄 것이다. 즉, 국보법의 문제는 단순한 인권의 문제가 아닌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