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특별기고>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한국정부, 범죄자와 무엇이 다른가?
내용
"참담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한국정부는 인명경시의 측면에서 범죄자와 다른 것이 없는 것 같다. 방송을 통해 ‘지존파 등 19명 사형집행’이란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에는 수많은 물음들이 떠올랐다. 왜 비밀리에 사형집행 시켰는가? 무엇을 두려워하였는가? 법무부 장관은 심지뽑기를 해서 사형 대기자 50명중 19명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많은 인권단체들이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사형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을 한국정부에 지적하였음에도 19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불시에 사형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국제인권기준과 국내외의 여러 경험과 연구결과에 근거해 볼 때 사형은 세계인권선언 제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생명권을 침해하는 형벌이다. 사형은 결코 범죄예방의 기능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오판의 가능성도 예방하지 못한다. 또한, 사형집행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비인간화시키며, 정치적 또는 사회적 목적으로 정부에 의해 이용되는 측면이 많은 형벌이라고 거듭 충고하였음에도 한국정부는 이례적으로 많은 숫자를 사형시켰다. 법을 수호하기 위한 이유도 아닐 것이다.

도리어 난 묻는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는 사형을 집행했는가를 말이다. 노태우씨의 비자금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19명의 목숨을 끊어버린 이유는 진정 무엇인가 말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형으로 현 시국에 쏠린 국민적 관심사를 희석시키려 했을까? 아니면, 국민들을 향해 함부로 까불면 안된다는 경고를 하려 한 것일까?

94년 12월 현재 사형은 세계의 절반인 97개 국가에서 이미 폐지되었으며, 사형폐지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UN인권위원회의 이사국이자 UN안전보장비상임이사국이 되기를 희망하는 한국정부가 사형폐지를 향한 UN의 권고사항을 계속해서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도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서 사형집행에 신중을 기할 줄 알았는데 이른바 문민정부라서 생명을 귀히 여길줄 알았는데 과거정부와 아무런 차이도 없다. 눈에는 눈, 귀에는 귀로 통하던 구약시대도 아니고, 중세시대도 아니다. 20세기 말의 한국은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동아줄에 목매달아 죽이는 것 외에 다른 형벌을 부과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점을 우리들의 후손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아버지를 살해한 교수 아들은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같은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돈없는 사람들이 유독 사형집행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광주에서 시민을 수없이 학살한 자들은 어떤 재판도 받은 바도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너무나 참담하다. 

'사회가 밉다'라는 지존파의 독설이 나를 전율하게 한다. 

오완호(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문서정보
문서번호 hc00008594
생산일자 1995-11-06
생산처 인권하루소식
생산자 오완호
유형 도서간행물
형태 정기간행물
분류1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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