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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사회 내 성폭력은 더 이상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 민주노총,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은 23일 종로성당에서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을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 원칙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토론회를 열었다. 100인위원회 시타 씨는 “강철구 성폭력 사건을 접하면서, KBS노조 민주노총 등 운동사회에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원칙이 없다고 느꼈다”며 기획의도를 말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재확인
주제발표에 나선 한국성폭력상담소 변황혜정 부소장은 “‘키스한 것도 성폭력이냐’고 억울해 한다면, 억울하다는 것은 가해자의 느낌이지 피해자의 느낌은 아니다”고 설명하며,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폭력의 개념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성폭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 사건은 성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의 입증 책임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있다는 것. 이에 따르면, 피해자에게 ‘너 왜 여관에 갔니?’ 라고 묻지 말고, 가해자에게 ‘너 왜 여관에 가자고 했니?’ 라고 물어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의 주장은 무조건 옳고 가해자의 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는 것으로 이해되어선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발생은 구조적인 문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김혜란 사무처장은 “운동적 신뢰관계가 곧 여성이 성폭력에 노출되는 과정”이었다고 운동사회 성폭력을 분석하고, “남성활동가는 여성활동가를 동지가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성폭력 사건을 남녀관계를 넘어 조직구조의 문제로 바라보며, 사건 직후 “피해여성은 삶 자체가 송두리째 뿌리뽑히는 반면, 가해자는 끊임없이 변명의 구조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리하여 ‘운동조직의 구조혁신과 민주주의’를 성폭력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제기했다.
이에 대해 시타 씨는 “강철구 성폭력 피해자들은 ‘배후설’, ‘음모론’ 등으로 사건 공개 이전보다 더욱 고통이 가중됐다”며, 가해자에 동조하거나 피해자들에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2차 가해의 심각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극복하기 힘든 왜곡된 성폭력 개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아래 민언련) 조석순애 씨는 조직 내 잘못된 성폭력 개념에 익숙해져 있었음을 고백했다. 지난 1월 민언련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임시대책위원장 조석 씨는 △사과문 작성 △민언련 회원활동 정지 △가해자 프로그램 이수 △재범시 사건공개 등을 가해자와 약속한 후 ‘실명공개를 하지 말아 달라’는 가해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피해자는 민언련에 계속 와야 했고 가해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계속 들어야 했기 때문에, 한달 후 다시 고통을 호소했던 것. 결국 가해자 실명은 공개되고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조석 씨는 “부끄럽게도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공개 비공개에 휩싸여 오히려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김혜란 사무처장은 “강철구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문제가 당시 KBS 노조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 것은 ‘성폭력 문제가 사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무의식 중에 드러낸 것”이라고 평했다. 이는 공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남성중심적 사고에 피해자들조차 자유롭지 못했다는 반증.
지난 10일 KBS노조 성폭력 사건의 주인공 강철구 부위원장이 언론노조로부터 제명된 후, 금속연맹 등 노동 사회단체들은 계속해서 언론노조의 결정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토론회에는 50여 명이 참석하여, 강철구 성폭력 사건 이후 성폭력에 대한 운동사회의 관심을 보여줬다. 시타 씨는 이날 토론회를 “개별 성폭력 사건들의 경험이 다른 가운데, 피해자의 입장에서 싸워야 한다는 원칙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하고, “운동사회 내에서 반성폭력 내규 제정운동을 벌일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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