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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오직 하나 꿈이 있다면 이 어둡고 어두운 역사에 맞서 이 시대 장한 어머니로 살고 싶습니다. 애물단지 자식을 빼앗겼지만 증오도 원한도 없이 제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겠습니다. 그토록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두 눈 제 자식 두 눈을 생각하면 험난한 삶의 비탈길 기어올라 죽음의 밑바닥까지도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미지의 세계 두려워하지 않고 제가 가야 할 모든 길 위에 놓여 있는 가시 돋친 이 아름다운 꽃으로 이 땅에 살아 있는 수많은 자식들을 위하여‧‧‧”
위의 글을 민가협 어머니들의 기도로 그 제목을 바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전경들이 판을 치는 거리에서나 추위로 얼어붙은 철야 농성장에서나 함성 높은 집회장에서나 어머니들의 모습은 곱게 개킨 옷가지와 행주질친 부뚜막과 아랫목과 다를 바 없는 푸근한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해왔다. 경찰의 연행을 몸으로 막아내고 최루탄 가루를 옷고름으로 틀어막고 난지도에 내팽겨지면서도 유치장으로 재판장으로 안기부로 교도소로 향한 어머니들의 발길은 멈춰진 적이 없었다.
민가협은 85년 미문화원점거농성투쟁, 민청학련 사건, 서노련 사건에서 구속된 수많은 학생‧청년‧노동자들의 가족들과 장기수 가족들이 모여 85년 12월 12일 만들어지게 되었다. 12월 28일 중구 삼각동에서 현판식을 하던 날도 경찰의 원천봉쇄로 현판식 행사가 무산되기도 했다.
민가협의 조직은 89년 양심수 후원회가 만들어지고, 91년 유가협이 독립함으로써 현재의 조직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 조직은 공동의장 4인(상임의장 서경순), 총무(남규선), 간사 6인, 구속학생학부모협의회, 장기수가족협의회, 청년민주인사가족협의회, 구속노동자‧농민가족협의회, 양심수후원회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가족회원 중에서 민가협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회원은 3백여명이며 후원회원은 1천여명이다.
재정은 이원화되어 후원회비는 100% 구속자 영치금과 출소장기수 지원자금으로 쓰이고, 민가협 운영재정은 어머니들이 서울대에서 8년째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장터와 그 외 수익사업으로 충당한다.
민가협의 주요활동은 양심수 전원석방운동, 보안법 철폐운동, 반 고문운동, 재소자 인권개선운동, 조작간첩 진상규명운동으로서 인권개선을 통한 우리 사회 민주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사회현실과 부딪치게 된 어머니들은 사랑의 폭을 넓히게 된다. 자식의 옥바라지에서 전체교도소의 처우문제로, 자식의 멍든 자국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고문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으로 나가는 등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를 고민하는 열린 가족이 된 것이다.
민가협의 주요한 활동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우선 긴급구명활동이다. 예고 없이 발생되는 강제연행과 행방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고문의 흔적을 찾아 언제든지 달려간다. 일단 달려가면 끝이 없는 농성투쟁이 시작된다.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모르는 당사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선배(?)들이 나서서 도와준다. 때론 단식도 하게 되고 경비교도대나, 전경에 의한 폭력세례도 다반사다. 요즘은 숨 좀 돌리고 산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실무자에게선 여전히 가쁜 숨이 느껴진다. 밑도 끝도 없는 독에 물 붓기 같았던 그런 활동을 이제는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대안들을 마련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싶은 것이 민가협의 소망이다. 최근에는 국제사면위원회, 로버트케네디재단, 아시아워치 등의 외국단체와 정보교환을 하는 가운데 인권침해 발생 시에는 미국, 유럽, 아시아의 여러 단체에 신속하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둘째, ‘목요집회’와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 있다. 목요집회는 민가협의 문제의식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93년 9월 23일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31회 열렸다. 목요집회가 이리 오래 갈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왜냐하면 문민정부 하에서 설마 더 가둬두랴 하는 기대를 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목요일에는 양심수 석방과 국보법 철폐를 요구하는 민가협의 집회가 열린다.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은 5년째 열렸는데 형식과 내용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안 해도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셋째, 정기적으로 양심수 현황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양심수의 통계는 우리의 인권지수를 나타내주는 가장 좋은 잣대였음을 누구나 인정한다. 민가협의 현재 통계로는 44년째 옥살이하는 김선명 할아버지를 비롯해 20년 이상 장기수 27명, 조작간첩 7년 이상 복역자 42명을 포함하여 300여명에 달하고 있다.
어머니들이 주는 감동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내 자식, 남의 자식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이 5년 이상 복역중인 어머니 중에는 자기 아들이야 형기가 있으니까 나올 것이니 수십년 간 옥고를 치르고 있는 장기수가 먼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도 있다. 파출부나 그 외 험한 노동을 하시면서 활동을 하시는 분들, 민가협 활동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둔 분들도 있다. 몇 분 어머니를 소개하자면 박용길 장로님은 창립 때부터 공동의장을 맡고 계시고, 전대협 송갑석 의장의 어머니는 전남 고흥에서 농사를 짓다가도 상경하여 활동하고 다시 내려가 농사짓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올라올 때면 항상 대학생 자식들 먹인다고 음식을 해 갖고 오신다고 한다. 민가협 활동 중 가장 가슴아플 때는 어머니들이 구속될 때다. 재판의 부당함에 분개한 어머니들의 항의가 구속으로 이어진 일이 가장 많다.
민가협 사무실의 철문은 요즘도 열고 닫기가 어렵다. 안기부와의 전쟁을 치른 지난 92년 안기부가 부수고 들어와 사무실을 털어 간 일이 있은 후로 문이 온전치 못한 까닭이다. 그 문을 여러 번 돌려 열어주는 배웅을 받고 나오는 뒤로는 사랑하는 가족의 안전한 귀가와 세상일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기도가 있다.
<인권운동 사랑방>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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