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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장기수 김선명(70)씨를 비롯, 8.15 특별사면복권 조치로 전국의 교도소에서 25명의 양심수들이 15일 오전 일제히 풀려났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이들 장기수들은 오전 9시15분경 안학섭(65), 김선명, 한장호(73)씨의 순으로 대전교도소 정문을 나섰다.
김씨는 민가협 어머니들과 출소 동료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곧 환영인파에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그는 “함께 고생한 동료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나만 나오게 돼 미안하다”면서 “아픈 동지들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또,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냐는 질문에 대해 “72년 6.23 선언 이후 전향공작반을 만들어 깡패들로 하여금 때리고, 바늘로 찌르고 심지어는 사람이 죽어나가게 만들 때가 가장 괴로웠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안학섭(65)씨는 “난 감옥에서 잔뼈가 굵었고 감옥에서 죽을 결심을 했다”면서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해 많은 분들이 헌신하고 있는 사실을 감옥에서 듣고 고무되었다”고 말했다. “너무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서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알지 못한다”면서 “국가보안법이 없어지고 남북간에 통일을 위한 장애가 제거되는 등의 모습을 보아야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출소자중 최고령자인 한장호(73)씨는 “통일을 위해 민주화를 위해 일어선 많은 학생, 청년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며 “조국통일을 위해 힘껏 싸워나가겠다”고 다짐해 환영 나온 이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김선명 씨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여 약 20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과 환영집회 동안 잠시 코피를 흘리기도 하여 주위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이어 환영사에서 안옥회 민가협 상임의장은 “장기간의 수감생활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당당히 살다 나오셔서 감사하다”며 “좁은 공간에서 30년, 40년 이상을 살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장기수를 비롯한 4백40여명의 양심수를 전원석방시키고, 국보법을 철폐시켜 양심수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
이날 대전교도소 정문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민가협과 출소 장기수들, 대전지역의 청년학생 등 1백여명이 모여들었고, 국내외 취재진도 약 30명 가량이 몰려 세계최장기수의 석방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편,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들의 경우 연고자가 없는 경우에는 양로원 등에 보내지게 된다. 김씨의 경우 가족이 처음 인수를 거부했으나, 민가협 관계자 등이 집요하게 가족을 설득하여김씨의 계수씨가 나와 인수 서류에 서명하였다. 김씨는 서울 관악구 낙성대에 위치한 출소 장기수들이 함께 거처하는 곳에서 지내게 된다. 또, 안씨는 그동안 옥바라지를 해온 친형 안장섭(73)씨와 함께 경기도 강화군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 장호 씨의 경우 인수를 할 누님이 최근 병석에 눕는 바람에 인수할 연고자가 없어 대전교도소 근처 성애경로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일본관련 간첩사건 5명도
일본관련 간첩사건으로 구속 11년째 복역 중이던 유종안(64)씨도 이날 대전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는 일본에 있는 누나로부터 조상의 비석을 세우기 위해 도움을 받은 것으로 인해 지난 85년 3월 구속되었다. 수사당시 고문에 의해 불구가 되어 다리를 몹시 절었다.
그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석방되게 되어 감사한다”며 “통일이 빨리 되길 바란다”는 말로 출소소감을 대신했다. 또한, “누님이 오래 전에 운명하신 터라 사건이 조작되었음에도 진실을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85년 3월 구속되어 11년째 복역중 가석방 조치로 출소하게 되었다. 한편 유씨와 비슷한 일본관련 조작간첩사건의 김철(68)씨와 신상봉(65)씨는 대구교도소에서, 최해보(68)씨와 조봉수(54)씨는 안동 교도소에서 오전 9시 전후하여 각각출소, 가족의 품에 안겼다.
이날 김씨 등의 출소를 전후해 대전교도소 앞에 모인 이들은 집회를 갖고 국가보안법의 철폐와 양심수의 전원석방을 촉구했다.
조용환 변호사는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씨가 석방되었지만, 아직도 40년 가까이 복역한 장기수들이 많다. 따라서 변함 없이 우리나라는 최장기수의 나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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