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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를 비롯한 보호감호제도 존치론자들은 보호감호가 형벌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보호감호가 형벌과는 다른 독자적 의의를 가진 사회보호적 처분인데다가 처우 역시 교도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상을 왜곡하는 것에 불과하다.
보호감호를 규정한 사회보호법에는 피감호자의 처우에 대한 규정이 단 한조항도 삽입돼 있지 않다. 피감호자들의 모든 처우는 행형법에 준하도록 돼있으며, 교도소 수용자들에게 적용되는 수형자분류처우규칙이 '피보호감호자분류처우규칙'이란 명칭으로 이름만 달라져 피감호자들의 생활을 옥죌 뿐이다.
청송 제1교도소 바로 옆에 자리잡은 감호소는 '감호소'임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현판이 없다면, 외관상으로 교도소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독거수용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으며, 2평 남짓한 방에 5명이 수감돼 칼잠을 자는 경우도 흔하다. 여름엔 습기와 곰팡이에 시달리고 겨울엔 동상과 치질에 노출된다. 선풍기도, 텔레비전도 청송교도소에 설치가 끝난 후에야 들어올 만큼, 기본 시설은 교도소보다도 뒷전이다. 교화와 재화를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거나 사회정착을 위한 교육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감호소를 지키고 피감호자들을 처우하는 이들 역시 교도소에 상주하는 일반 교도관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 피감호자들은 ""우유(교도소의 처우)를 사이다병(보호감호소)에 넣고 사이다(보호감호)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분통을 터트린다. 지난 10월 가출소한 김모 씨(49)는 ""교도소에서 감호소로 넘어왔을 때 달라진 거라곤 수의색깔이 황토색으로 변한 것뿐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피감호자들이 특히 주목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외부교통권의 제한이다. 외부교통권이란 자유권을 박탈당한 수용자가 외부 사회와 접촉·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로 수용자는 서신, 접견, 귀휴, 출판물 이용 등의 외부교통권을 통해 가족 및 친지들과의 끈을 유지하고 사회변화를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피감호자들의 서신은 검열되고 신문에 교도소 관련 기사라도 나는 날이면 신문은 걸레가 되어 들어온다.
오지 중에 오지로 알려진 감호소는 서울에서만 꼬박 5시간 이상을 달려가야 도착할 수 있지만, 접견은 교도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크릴판을 사이에 둔 채 10여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질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족들은 쉽게 면회 올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7백여명이 넘는 보호감호소에 면회실이 달랑 하나밖에 되지 않는 이유다. 가족이나 친지가 찾아오기 어렵다는 피감호자가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귀휴'와 '사회견학'은 교도소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귀휴는 사회적응을 위해 일정 기간 수용시설을 벗어나 생활하도록 하는 감옥안의 휴가와 같은 제도로 외국의 경우 재소자 재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행형법은 귀휴를 가족의 사망, 회갑 등과 같은 경조사와 각종 훈련과 시험 등의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출소 후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도입된 사회견학 역시 나가 본 피감호자가 손에 꼽힐 지경이다.
결국 엄격히 제한된 가족 및 사회와의 접촉은 가족의 해체는 물론 피감호자들에게 사회 복귀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시킨다. '사회복귀'란 미명 하에 영구적인 피감호자 '사회격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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